7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골목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커피집 앞에 여성들이 모여 있다. 오래돼 낡은 듯한 건물 분위기를 활용한 독특한 카페와 공방 등이 속속 생겨나면서 이 동네를 찾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낡고 오래돼 색 바랜 저층 건물이 빼곡하게 늘어선 지하철 2, 3호선 을지로3가역. 고개를 들면 보이는 청계천 주변 고층빌딩과 대비돼 더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이 최근 조용히 변신하고 있다. 삼삼오오 찾는 사람도 늘면서 음침하던 동네가 힙타운(hiptown)으로 바뀌었다. 개성을 중시하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 일명 힙스터(hipsters)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힙타운 면모를 갖춰가는 이 동네는 행정구역상 중구 입정동 산림동 수표동이다. 예전에는 주로 단골손님이나 찾았지만 지금은 골목골목 콕 박힌 ‘맛집’이나 전시장을 ‘순례’하는 사람도 생겼다.
기자도 6일 오후 스마트폰 지도를 보고 몇 번을 헤매다 골목 끝 식당에 도착했다. 변변한 간판도 없지만 이미 빈자리가 없었다. 약 170m 떨어진 다른 음식점도 20, 30대 손님으로 꽉 찼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유선아 씨(31·여)는 “골목이나 거리는 예스러운데 식당 내부는 첨단을 달리는 곳이 많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종업원 이서준 씨(30)는 “식당 문을 연 지 1년이 넘었는데 요즘 손님이 는다. 주말에는 자리가 쉽게 꽉 찬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젊은 화가들이 청소년들과 함께 꾸민 을지로 공구상가 철제 셔터. 분홍, 파랑, 노랑으로 우주비행선과 귀여운 외계인을 그렸다. 서울 중구 제공주변 세운상가나 공구상가 일대에는 최근 전시공간과 공방, 화실 등이 60여 곳 생겼다. 고대웅 씨(28)도 2015년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임차료가 싼 데다 조명 공구 가구 인쇄 기계 등이 한데 모인 독특한 분위기에 반했다. 그림을 그리고 연주도 하는 그는 “앞으로도 여기서 여러 작업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씨 같은 젊은 예술가들은 동네 변신을 골목부터 시작했다. 칙칙하던 골목에 색을 입혔다. 지역 청소년과 힘을 모아 무채색에 가깝던 상가 철제 셔터에 노랑 파랑 분홍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바뀐 셔터 자체가 명물이 됐다. 셔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늘자 중구는 밤에도 볼 수 있도록 야간 조명을 달기로 했다. 이들 소장파 예술가는 전시회를 열거나 재즈 공연을 선보이고 디제잉도 한다. 아기자기한 식당과 카페도 많아졌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작가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상가 매매나 임차를 문의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힙스터가 많아지면 힙타운이 되는 법이다.
한동안 침체되던 을지로가 힙타운으로 떠오른 데에는 중구의 ‘골목문화사업’이 한몫을 했다. 중구는 2015년 디자인·예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이곳 빈 가게 임차료를 90% 지원해 젊은이들이 싼값에 빌릴 수 있도록 했다. 9월 새 단장한 세운상가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거리가 산뜻하게 정리된 데다 2005년 철거된 공중보행교(세운상가∼대림상가)가 부활하면서 유동인구가 더 많아졌다. 세운상가에 입주한 스타트업 창업주들도 재료를 구하러 공구거리를 활보한다.
힙타운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벌써부터 젠트리피케이션(임차료가 상승해 원주민들이 외곽으로 쫓겨나는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0년째 이곳에서 주점을 하는 이모 씨(50)는 “젊은이와 에너지가 넘쳐흘러 좋기는 하지만 임차료가 너무 오를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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