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물탱크 설치해 8년간 60억원대 우지 빼돌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9일 03시 00분


대형저울로 무게 재는 허점 노려 트럭 밑바닥 4분의 1 물탱크로 개조
전남 농민 900여명 엄벌 촉구

1990년대까지 폐기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소 비계 우지(牛脂)가 각광받고 있다. 사료 원료 등으로 쓰이면서 2005년 kg당 36원에서 올해 kg당 470원으로 올랐다. 농촌마다 우지 확보 경쟁이 가열되자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전남의 한 축협 우지공장이 60억 원대 횡령 피해를 입은 것이다. 피해를 입은 농민 900여 명은 법원에 우지 횡령사건 관련자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축협 우지공장 횡령 사건은 2015년 6월 첫 실체를 드러냈다. 숙직을 서던 직원 A 씨(39)가 새벽 시간대에 가동을 멈춘 공장에서 뭔가가 콸콸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지공장은 경기 부천, 충북 음성 공판장에서 도축한 소 비계(우지) 등을 매일 20여 t 구입, 가공해 사료 원료로 팔았다.

A 씨는 의무감을 갖고 10일간 전산작업을 하다가 25t 우지 운반트럭의 수상한 점을 눈치 챘다. 트럭이 매일 운반한 우지 물량이 서류와 조금씩 달랐다. 또 가동을 멈춘 공장에서 밤마다 트럭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도 이상했다.

A 씨는 의문을 밝히기 위해 운송업자 나모 씨(49)의 트럭을 6개월간 추적했다. 부천 도축장 등에서 우지를 싣고 오던 나 씨의 트럭은 곧바로 축협에 오지 않고 매일 호남지역 한 업체에 들렀다. 상당량의 우지를 가공공장에 내려놓은 뒤 전남의 한 하천에서 물을 채웠다.

6개월간 추적한 결과 나 씨의 트럭 화물칸 밑바닥 4분의 1 정도가 물탱크로 몰래 개조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씨는 트럭에 실린 우지 무게를 공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저울로 잰다는 허점을 노렸다.

매일 7, 8t의 우지를 빼돌린 뒤 트럭 물탱크에 하천 물을 채운 것이다. 횡령사건을 보고받은 축협 이사회는 2015년 12월 나 씨를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또 6개월 뒤 빼돌린 우지를 구입한 업체 관계자 B 씨(49) 등을 고소했다.

전남지방경찰청 수사 결과 나 씨는 2008년 1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400차례에 걸쳐 시가 62억 원 상당의 우지 1만6694t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나 씨는 우지를 빼돌려 챙긴 돈으로 외제 승용차와 오토바이 10여 대를 타고 다니며 수상스키와 스키 등을 즐겼다. 그는 구속 기소된 뒤 1, 2심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경찰은 빼돌린 우지를 구입한 B 씨 등 업체 관계자 2명을 상습 장물취득 혐의로 입건했다. B 씨 등은 올 7월 불구속 기소돼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B 씨는 “우지를 정상 가격에 구입했고 횡령된 줄 몰랐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협 조합원 1041명 중 987명은 최근 재판부에 “B 씨 등을 엄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합원 대부분은 60∼80대 농민들로 정상대로면 우지공장에서 생기는 수익금을 배당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조합원 이모 씨(51)는 “나 씨가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간 2만 t 정도 우지 횡령이 이뤄졌다고 자백했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8년 치 범행만 기소된 데다 공장 환경 처리비용 등을 감안하면 100억 원가량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우지는 각종 사료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원료다. 전국적으로 수십 개 업체가 있지만 축협 같은 공적기관에서 운영하는 우지공장은 횡령 피해를 입은 한 곳뿐이다. 축협 우지공장은 횡령 피해를 입은 데다 우지 구매 방식이 2015년 최고가 입찰로 바뀌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축협의 한 관계자는 “축협의 유일한 우지공장이 문을 닫을 경우 가격 상승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사료 값 인상으로 이어져 농민들이 2차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비계 우지#축협 우지공장 횡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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