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 고려시멘트는 지난해 9월 ‘레미콘 공장을 추가로 운영하겠다’며 장성군에 사업 승인을 신청했다. 장성군이 주민생활권 보호 등을 이유로 불허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최근 ‘시멘트에 이어 레미콘 공장까지 들어서면 환경 침해가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장성군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농어촌 축산, 발전시설 신축 등을 놓고 갈등이 잇따르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권한과 주민 환경권을 우선 고려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성에 고려시멘트가 들어선 것은 1972년이다. 호남지역 최초 시멘트 공장으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도 줬지만 인근 주민들은 비산먼지와 분진 피해를 호소했다. 고려시멘트는 지난해 장성군에 규모 4만3496m² 레미콘 공장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공장 증설 및 업종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장성군은 1개월 만에 레미콘 공장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주민 의견을 듣는 등 행정절차를 거친 끝에 장성군이 든 핵심 사유는 두 가지. 시멘트 공장이 있는데 레미콘 공장까지 들어서면 인근 주민과 마찰이 우려되고, 주거와 생활환경에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성군에 따르면 시멘트 공장 주변에 주민 4136가구, 9494명이 산다. 관공서 14곳에 공무원 700여 명이 일한다. 국도 1, 24호선과 고속철도가 통과하며 재래시장과 농경지가 있다. 초등학교가 공장에서 40m 떨어져 있어 레미콘 공장까지 가동되면 소음, 분진 피해가 악화되고 대형 차량이 드나들어 교통사고와 체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레미콘 공장 터가 장성 관문에 있어 도시 발전과 인구 유입, 친환경도시(‘옐로시티’) 조성 정책에도 맞지 않는다고 군은 설명했다.
고려시멘트 측은 올 1월 ‘장성군이 레미콘 공장 승인 거부 처분을 하면서 구체적 근거와 이유를 명시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공장 측은 장성군이 인근 주민이 아닌 마을 이장들에게 의견을 들은 데다 주민 생활환경이나 초등학교 학습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주민 반대는 신청 불허 사유가 아닌데도 장성군이 권한을 넘어서 승인을 거부했다는 논리도 폈다.
주민들은 9월 ‘동의 없이 레미콘 공장 신축을 강행하려 한다’며 반대집회를 열고 장성군의회는 신축반대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갈등은 커졌다.
광주지법 행정2부(부장판사 이정훈)는 12일 장성군이 레미콘 공장 증설을 불승인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장성군의 승인 거부 처분의 근거와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고 주민 대표인 이장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 장성군이 헌법상 권리인 주민 환경권을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재량권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시멘트 공장 환경 침해에다 레미콘 공장 가동에 따른 침해가 가중돼 주민 생활환경이나 학습환경이 나빠질 우려가 있다”며 “레미콘 공장이 가동되면 사후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고 대형 트럭 통행으로 사고 위험 등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고려시멘트 행정소송 관련 장성군 입장 발표문’을 내고 사법부 판단을 환영했다. 유 군수는 “사법부 결정은 기업이 주민 희생만을 요구할 수 없다는 판단과 주민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경우 협의하고 설득하라는 메시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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