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N T E R V I E W ‘스포츠경영학자’ 강준호 서울대 교수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변모해야
《강준호 교수는…한국 스포츠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스포츠학자다. 서울대에서 스포츠과학 학사,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미시간 대학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네티컷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스포츠경영학 교수로 임용됐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분야 대표 국제학술지 Journal of Sport Management의 편집위원이며, 국내외 다양한 스포츠 단체, 기업, 정부를 자문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책사업인 개발도상국 스포츠행정가 양성사업 (Dream Together Master)을 운영하는 서울대 국제스포츠행정가 양성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학교도 가지 않고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중학생 아들을 둔 지인이 있었다. 그 분이 아들을 위해 신경정신과 의사, 목사님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낙담한 와중에 나를 만나게 됐다. 우리 학과 학생을 소개해서 다양한 스포츠활동(달리기, 농구 등)을 시켰더니 6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외국의 일류 대학에 다니고 있다.”
강준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인간은 육체, 이성, 감성, 영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현대인이 겪는 많은 문제들이 이들 간의 조화가 깨지면서 일어난다. 스포츠는 이들을 조화시키는데 탁월한 효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스포츠의 중요성과 역할은 더 커질 것이라고 하는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기술,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 첨단과학기술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인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산업혁명이 기계가 인간의 근력을 대체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좌뇌를 대체하고 있다. 인간의 근력과 지력은 이미 기계와 AI에 적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인간이 생명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신체 움직임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순수 노동으로 그 총량을 채웠지만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미래사회에서는 스포츠가 그 총량을 채워줘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의 몸은 ET처럼 될 수도 있다.
스포츠를 단순한 놀이로만, 몸의 문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행복은 몸에 있다. 그것도 움직이는 몸에 있다. 마음도 정신도 몸의 지배를 받는다. 스포츠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바꾸는 행동이다.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필수적인 기초공사로 인식해야 한다.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어떤 분야이고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나?
스포츠는 육체, 이성, 감성, 영혼이 동시에 녹아있는 거의 유일한 인간 활동이다. 인간이 점차 소외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온전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스포츠에 대한 수요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 수요에 부응해 ‘무엇인가(이벤트, 서비스, 제품, 시설, 정책, 프로그램 등)‘를 제공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 바로 스포츠 매니지먼트다.
미래에는 현재의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구체적인 직업을 특정하는 게 큰 의미는 없다. 인간과 스포츠의 본질을 고민하며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참고로 서울대에는 80여 개의 전공이 있는데, ‘전공을 살린 진로의 폭이 가장 넒은 전공 톱10’에 스포츠를 다루는 저희 학과가 들어갈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100세 시대’가 곧 도래 할 것이다. 스포츠의 구체적인 효용성은?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사는 기간이다. 적절한 스포츠활동은 신체나이를 낮춰준다. 이것은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의료비 증가와 경제활동인구 감소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규칙적인 운동이 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규칙적으로 신체활동을 하면 기억력을 관장하는 해마의 뇌세포가 새로 생성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인간의 뇌세포는 새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기존 학설이 뒤집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치매예방법은 유산소 운동이다.
은퇴(Retire)의 의미는 타이어를 바꿔 끼는 것이다. 은퇴 후, 새로운 교육을 받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인생 2모작’도 신체나이가 젊어야 가능하다. 차를 ‘BMW-X’로 바꿔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던데…
버스, 메트로(지하철), 워킹(걷기), 택시의 줄임말이다(웃음). 4년전 자가용을 팔아 버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하루에 1만보는 기본으로 걷는다. 1석3조(건강증진, 탄소배출감소, 비용절감)다. 이와 같이 신체나이를 낮추는 일은 개인의 노력이 필수지만 사회적 인센티브가 제도화돼야 한다.” 스포츠의 또 다른 효용성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라이프 스킬(life skill)을 길러준다. 스포츠는 협동과 경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생생한 학습현장이다.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며 성취감과 좌절을 모두 겪어 볼 수 있다.
자기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꼽는 자기 규율과 GRIT(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집념’)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순간 판단력과 상황 대처능력, 상대에 따라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창의적인 능력도 함양할 수 있다.
스포츠는 몸의 근육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길러준다. 이것이 인생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심력(心力)의 바탕이 된다. 스포츠는 인터넷에 다 나오는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훨씬 중요한 역량과 교훈을 가르쳐 준다. 학생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평생 독서와 스포츠,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한다면 누구나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I N T E R V I E W ‘스포츠경영학자’ 강준호 서울대 교수▼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와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용어와 개념부터 혼란스럽다. 체육, 운동, 스포츠, 레저가 혼용돼 쓰이고 있다. 체육은 일본이 유럽의 근대교육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physical education’이라는 교과목을 번역한 말이다. 신체활동이 주로 학교에서 일어나던 1900년대 초에는 체육이라는 용어에 문제가 없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신체활동 현상을 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유엔은 스포츠를 모든 종류의 신체활동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로 정의했다. 유럽헌장도 그와 비슷한 의미로 스포츠를 정의하고 있다. 체육은 원래 의미대로 학교 교과목 이름으로 돌려주고 글로벌 공통어인 ‘스포츠’를 사용해야 한다. 디자인,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스포츠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화 시절부터 정부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한 결과다. 소수의 대기업을 집중 지원해 경제적으로 압축성장한 것과 같다. 하지만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했음에도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고 문화는 시대착오적인 요소를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다.
압축성장의 가장 큰 부작용은 청소년들이 ‘운동하는 기계’와 ‘공부하는 기계’로 이원화된 것이다. 성공확률 1%가 안 되는 스포츠 선수의 길로 들어선 후 공부와 담을 쌓고 운동만 하다가 낙오되면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 자식이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스포츠를 시키기 망설여진다. 게다가 대학진학을 위한 성적 지상주의로 인해 과학적 훈련을 받지도,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를 배울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최근 운동선수에게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학교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의 낡은 시스템으로는 미래사회에서 스포츠에 대한 국민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스포츠는 수요 측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 인구는 줄지만, 스포츠 소비의 질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급자 쪽이다. 공급자는 정부, 경기연맹, 스포츠팀, 대학의 스포츠관련 학과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정부는 엘리트 스포츠시스템의 개선과 더불어 일반 학생과 국민의 스포츠 수요에 부합하도록 종목별 수준별로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존의 스포츠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개선하고, 필요한 시설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수준의 스포츠이벤트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한국은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변모해야 한다. 여성과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국민이 다양한 스포츠를 각자 수준에 맞게 즐기며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스포츠에 대한 인식과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정부는 스포츠를 단순히 기능적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의 경제 활력을 높이는 사회적 기반이자 핵심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문체부뿐 아니라 교과부, 보건복지부, 산자부 등 모든 관련 부처가 스포츠정책에 힘을 모아야 한다. 김경제 기자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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