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오늘(11월 24일자) 동아일보 5면에는 알파벳으로 쓴 기사가 나갔다(위 사진). 글씨가 너무 작아 보기가 힘드실 테니 일부를 좀 확대해 보면 아래와 같다.
‘외국어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가운데서도 ‘이 글을 어떤 언어로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는 분이 적지 않으실 터다. 이 글은 ‘에스페란토’라는 언어로 쓴 ‘조선 에스페란티스토 연맹 선언’이다. 에스페란토는 루도비코 자라로 지멘호프 박사가 1887년 ‘만국 공통어’를 목표로 만든 인공 언어이고, 에스페란티스토는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은 가리킨다.
도서출판 갈무리는 독일 출신 울리히 린스 박사가 쓴 ‘위험한 언어’를 2013년 펴내면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종족에 대한 저주받은 편견과 장벽을 제저하고, 진정한 사랑과 형제애로 하나가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자애로운 인류 구성원들은 이미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강압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불합리하고 황당한가를 고뇌하면서 지켜보았다. 모든 민족의 고유 언어는 각각의 민족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인류를 위해서는 오직 에스페란토만이 존재해야 한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이 글을 실었던 건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 선생(1888~1968)이 주필 겸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벽초(碧初)라는 호는 “푸름을 처음 배운 사람”이라는 뜻. 여기서 푸르다(碧)는 건 에스페란토를 상징하는 녹색을 가리킨다.
그 뒤로 홍 선생은 매주 월요일자 지면에 ‘에스페란토 란(欄)’을 만들어 내보낸다. 당시 이 꼭지를 담당한 기자는 바로 춘원 이광수(1892~1950)였다. 이듬해(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그러니까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카프(KAPF)’라고 배우는 단체가 문을 열었는데, KAPF는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라는 에스페란토 약자다. 동아일보는 1930년 총 100회에 걸쳐 에스페란토 강좌를 싣기도 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이렇게 에스페란토 붐이 일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험한 언어’는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이 큰 범죄 중 하나였던 시기에, 지식인들이 에스페란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며 “조선의 초기 에스페란토 운동은 모든 지식인들에게 이념적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진보적인 구국운동으로 여겨졌다”고 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이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걸 ‘중단시키기 불가능한 ’위험한 사상‘에 빠져드는 첫 걸음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에스페란토를 보급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배신의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지도자를 체포하는 등) 조선어에 대한 억압이 시작되자 조선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 역시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우리는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상 ’위험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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