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등 115명을 태운 채 태국 국경 밀림지대에 추락한 대한항공 KE858편 보잉 707 여객기가 우리나라에 입국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일본인 남녀 승객 2명이 바그다드에서 탑승, 사고 직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내린 사실이 밝혀져 사고기 추락 원인의 규명에 중요한 단서로 떠오르고 있다.”(동아일보 1987년 12월 1일자 1면)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무선보고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단순 추락 사고로 보였지만 동아일보의 특종보도로 수사가 급진전됐다. 하치야 마유미와 하치야 신이치라는 일본인 2명이 1987년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했다가 추락하기 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직접 기내에 휴대할 수 있는 수하물에 폭발물을 숨겨 들어가 비행기 앞쪽의 수하물 보관함이나 앞쪽 화장실에 장치해놓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지면에 실린 KAL기 사무장 인터뷰도 폭발테러 수사에 힘을 실었다. 박길영 사무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KAL기가 비행하는 동안 처음에는 남자가 7B 좌석에 앉아 있었고 여자는 7C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기내식 이후에는 이들 두 사람의 좌석이 서로 바뀌었던 점이 기억난다. 이는 남자가 화장실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동아일보 1987년 12월 1일자 10면)
기사가 나간 뒤 바레인의 호텔에 머물며 “현지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접촉을 시도하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만나주지 않았”던 두 일본인(동아일보 1987년 12월1일자 1면)은 로마로 떠나려다 공항에서 체포됐다. 확인 결과 이들은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였다. 김승일은 조사를 받던 중 독약을 삼켜 자살했고 김현희는 목숨을 건졌다. 이 소식 역시 동아일보 1987년 12월 2일자 1면에 특종 보도됐다.
이듬해 1월 15일 김현희는 기자회견장에 섰다. “북한이 88서울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고 중동노선 대한항공기를 이용하는 해외진출 노동자를 희생시킴으로써 국내 근로계층 서민의 대정부 불신을 충동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KAL기 공중폭파사건을 일으켰다”(동아일보 1988년 1월15일자 1면)는 사건 전모가 공개됐다. 그는 “끝까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부인했지만, 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 시내 전경과 인민의 모습, TV에 나타난 여기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1988년 1월 21일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해 비자발급 규제를 엄격하게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1988년 1월 26일 일본-북한 간 특별기의 일본 기항을 중지하는 등 제재조치를 단행했다. 북한은 2008년 핵협상 진전으로 테러국가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최근 연이은 핵, 미사일 실험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됐다.
김현희는 1990년 재판을 받고 사형이 선고됐으나 전향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그는 사건 30주년을 맞아 미국의 소리 방송이 최근 공개한 인터뷰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유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며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 된 건 잘 된 일”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원래 테러 국가이자 거짓으로 이뤄진 국가”라는 김현희의 얘기는 남북 대치정국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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