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7명이 합법적 존엄사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03시 00분


연명의료법 시범시행 한달

이달 초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60대 여성 환자 A 씨의 숨이 가빠졌다. 다발성 골수종(혈액암)과 폐렴이 겹쳐 인공호흡기를 단 채 혈액 투석을 하고 있었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A 씨는 평소 가족에게 “임종이 다가오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의료진이 의식을 잃은 A 씨에게 임종기 판단을 내리자 가족은 인공호흡기를 떼는 데 동의했다.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A 씨는 몇 분 후 영면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3일 연명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한 뒤 A 씨처럼 연명의료결정법상 절차를 밟아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포기한 환자가 총 7명이라고 28일 밝혔다. 이 중 스스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를 포기한 환자는 2명뿐이었고 나머지 5명 중 4명은 A 씨처럼 가족이 환자의 평소 의중을 대신 증언하는 방식을 취했다. 1명은 연명의료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낸 적이 없어 가족 전원이 연명의료 포기에 대신 동의했다.

사망자 7명 중 이미 받고 있던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A 씨가 유일하다. 나머지 6명은 새로운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 ‘유보’ 결정을 내렸다. 새 법은 중단과 유보의 무게가 같다고 보고 있지만, 실제 환자와 가족은 이미 부착한 인공호흡기나 혈액투석기 떼는 것을 더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상담을 받은 말기·임종기 환자는 44명이었지만 실제로 제출한 사람은 11명이었다. 연명의료를 받다가 숨지는 환자는 하루 평균 10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내년 2월 4일 전면 시행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많은 말기·임종기 환자가 스스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거나 새 제도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의미다.

건강한 사람도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총 2197건 접수됐다. 서울(681명)과 경기(608명), 충청(343명), 대전(137명)을 제외한 시도는 작성자가 거의 없었다. 접수 기관이 서울, 대전, 충남에 총 5곳뿐이기 때문이다. 전체 작성자 중 여성(1515명)이 남성(682명)보다 배 이상 많았고, 연령별로는 70대(748명), 60대(570명), 50대(383명) 순이었다.

복지부는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한 새 법의 취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내년 1월부터 TV와 라디오, 지하철 광고를 비롯한 대대적인 홍보 사업을 할 예정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수 기관이 부족한 광주, 제주, 울산 등의 거주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2월부터는 지역 보건소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도 의향서를 접수한다.

하지만 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입원 환자가 연명의료를 포기하려면 병원은 종교인·법조인·윤리학자 등 외부인사를 포함한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복지부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적잖은 요양병원은 외부인사는커녕 의사 부족에 시달린다. 지난해 요양병원에서 임종기를 맞은 환자가 5만9852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수만 명의 노인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요양병원 등 중소병원은 ‘공용윤리위원회’와 협약해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합법적 존엄사#연명의료법#시범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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