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窓]딸과 소송 80대 자산가, 뇌경색 쓰러지자 딸이 보호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4일 03시 00분


무역업체 A사 최모 회장(89)에게 서울 종로구의 한 도심 재개발 사업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2000년 7월 서울시는 최 회장 소유의 1775m² 규모 땅과 건물이 포함된 지역을 도심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최 회장 등 일부 지주는 개발에 반대해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은 결국 강행됐고 최 회장은 2009년 땅과 건물을 강제로 수용당했다. 최 회장의 은행계좌에는 공탁금 명목으로 262억 원이 입금됐다. 최 회장은 공탁금을 은행에 예치해둔 채 수용당한 토지를 되찾기 위해 다시 소송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2년 4월 최 회장의 계좌에 들어있던 공탁금 중 162억 원이 돌연 최 씨의 둘째 딸과 그의 가족 계좌로 이체됐다. 뒤늦게 이를 안 최 회장은 둘째 딸 최 씨가 자신 몰래 공탁금을 빼갔다며 2015년 4월 예금반환 소송을 냈다.


최 회장은 이에 앞서 2013년 12월 첫째 딸과도 A사 주식 문제로 송사를 벌여야 했다. 첫째 딸이 가짜 주식양도양수계약서를 꾸며 최 회장 소유의 A사 지분 44.8%를 빼돌린 때문이었다.

재산을 노린 딸들의 행동에 위협을 느낀 최 회장은 2015년 10월 지인 손모 씨(64·여) 부부 등에게 신변 보호와 민·형사 재판 변호사 선임 등 권한을 위임하는 위임장을 작성했다.

재판 과정에서 둘째 딸 최 씨 측은 “최 회장이 고령으로 지적 능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최 씨가 최 회장의 비서를 통해 몰래 최 회장의 커피에 신경안정제를 탄 사실이 드러났다. 최 회장의 비서가 두 딸이 재산을 빼돌릴 때 최 회장의 신분증과 도장 등을 몰래 건네며 도움을 준 사실도 밝혀졌다.

최 회장은 올 5월까지 이어진 두 딸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딸들이 최 회장의 허락 없이 공탁금을 인출한 사실과 A사 주식을 빼돌린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위임을 받아 소송을 진행한 손 씨 등은 최 회장에게 소송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현재 한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의 보호자로 나선 둘째 딸 최 씨는 손 씨 측이 최 회장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다. 병원도 딸 최 씨의 요청에 따라 손 씨 측의 접견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손 씨 측은 “둘째 딸 최 씨가 아버지를 감금했다”며 최근 고발장을 경찰청에 제출했다. 정신이 멀쩡한 최 회장을 딸 최 씨가 병원에 가둬놓고 있다는 것이다. 손 씨 측은 대법원 판결 직전인 4월 재판부 명령으로 두 차례에 걸쳐 5분씩 최 회장을 접견했다며 “(접견 당시) 최 회장의 인지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둘째 딸 최 씨 측은 “손 씨 등이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하는 행동”이라며 “아버지가 연로하셨고 이미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맞섰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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