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5시 반경 인천 옹진군 영흥도에는 비가 내렸다.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일출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바람은 초당 8∼12m 속도로 불었다. 파고는 1.5m 안팎이었다. 이따금 천둥 번개도 쳤지만 전반적인 기상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영흥도 진두항에 정박한 9.77t급 낚싯배 ‘선창1호’에 승객들이 올랐다. 서모 씨(37) 형제 등 20명이 차례로 배에 탔다. 내부 선실은 금세 찼다. 이른 아침이라 대부분 자리를 깔고 누웠다. 서 씨 형제는 갑판에서 출항을 기다렸다.
오전 6시경 선창1호가 진두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4km 정도 떨어진 영흥화력발전소 인근 해상이었다. 여기서 낚시를 하고 오후 4시까지 귀항할 예정이었다. 항구를 떠난 지 얼마 안 돼 서 씨 형제의 눈에 뒤편에서 접근하는 배 한 척이 보였다. 336t급 급유선 ‘명진15호’였다. 명진15호는 금세 가까워졌다. 서 씨 형제가 조타실을 향해 외쳤다. “급유선이 다가온다. 부딪힐 것 같다.”
파도와 엔진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한 듯 조타실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선창1호는 그대로 항해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명진15호가 선창1호의 왼쪽 뒷부분을 들이받았다. 낚싯배는 낙엽처럼 뒤집혔다. 서 씨 형제를 비롯해 갑판에 있던 김모 씨(27) 등 3명은 바다로 튕겨 나갔다. 이들은 가까스로 어선에서 떨어진 스티로폼에 매달렸다. 약 10분 후 명진15호가 바다를 향해 조명을 비췄다. 서 씨 등은 “여기 사람 있다. 살려 달라”며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배에서 내려준 사다리그물망을 잡고 겨우 올라갔다. 선실에 있던 송모 씨(42)는 깨진 창문으로 빠져나온 뒤 명진15호에 구조됐다.
사고 직후 명진15호 선장과 선내에 갇혀 있던 심모 씨(31)가 112 등에 신고했다. 오전 6시 42분 인천해경 영흥파출소 소속 구조대가 탄 고속단정을 시작으로 경비정과 헬기가 속속 현장에 도착하면서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구조대는 선실에 갇혀 있던 심 씨 등 3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다른 11명은 대부분 익사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의 생사를 가른 건 이른바 ‘에어포켓’이었다. 구조된 3명은 배가 순식간에 뒤집힌 뒤 공기가 남아 있던 공간에서 약 1시간 30분을 버텼다. 사고 해역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서 김모 씨(42) 등 2명이 발견됐지만 숨져 있었다.
이날 해경 구조 시간을 놓고 일각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해경 고속단정은 신고 3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또 수중구조팀은 사고 1시간이 지난 7시 17분경 도착했다. 이에 해경은 이동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늦은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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