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8시경 전복된 선창1호 또 하나의 선실. 유일하게 공기가 남은 공간에서 이모 씨(32)와 두 친구가 숨을 몰아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에어포켓 산소는 줄어들었다. “살 수 있다”며 서로를 다독이던 말도 아껴야 했다.
이들은 이날 배에 갇혀 있다 살아남은 유일한 3명이다.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 시간은 약 2시간 40분. 이 씨는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폐쇄된 방이나 캄캄한 곳에 가면 어제가 떠올라 괴롭다”고 말했다. 구조된 후 각기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이들은 서로 연락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회에서 알게 된 이 씨와 친구들은 자주 낚시를 다녔다. 이 씨는 “낚시 멤버였다. 평소처럼 새 장비를 챙겨 나갔다”고 말했다. 오전 6시. 이 씨 일행은 선창1호에 올랐다. 선장실 옆 선실은 이미 다른 승객들로 붐볐다. 선체 바닥에 위치한 다른 선실로 향했다. 선장실에서 폭이 1m가 안 되는 계단을 내려갔다. 원래는 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던 어창. 낚시꾼이라면 익숙한 공간이다.
오전 6시 5분. ‘쾅’ 소리와 함께 이들은 벽으로 던져졌다. 배가 뒤집히면서 선실 벽과 바닥에 부딪치고 나뒹굴었다. 이 씨는 “머리, 어깨가 수없이 부딪쳤다. 기절하지 않은 게 놀랍다”고 회상했다.
6시 7분, 배가 완전히 뒤집혔다. 바닷물은 금세 쇄골까지 차올랐다. 얼음장 같았다. 얼굴을 천장이 돼버린 바닥 쪽으로 최대한 들어올렸다. 바로 앞 친구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 심모 씨(31)는 ‘혹시’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불이 들어왔다. 112, 119, 122…. 기억나는 구조 요청 번호를 다 눌렀다. 선실 바깥에서는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갑판에 있던 승객 3명이 낚싯배를 들이받은 급유선 선원들을 향해 던지는 구원의 외침이었다. 이 씨 일행도 벽과 천장을 주먹으로 마구 쳐댔다. “살려주세요.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
물은 점점 차올랐다. 구조의 손길이 오지 않자 탈출을 시도했다. 바깥으로 난 유일한 통로는 선장실로 향하는 문이었다. 유일하게 헤엄칠 수 있던 심 씨가 잠수해서 이 문을 열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 뒤집힌 배에서 이들 발아래, 계단 아래 있는 문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이 씨는 “너무 어두워 방향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탈출을 포기하고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구조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커져 갔다. 사고 발생 50분이 지났을 때 다시 해경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먹통이었다.
심 씨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절망적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60번이고 70번이고 계속 통화버튼을 눌렀다”고 말했다. 40분 만에 가까스로 119에 연결됐다. 전화가 끊기면 다시는 연결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들은 1시간 넘게 구조대원과 통화했다.
하지만 에어포켓 산소가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말을 아꼈다. 이 씨는 “숨도 천천히 조금씩 쉬었다. 숨 한 번에 산소가 뭉텅 줄어드는 것 같았다. 살려고 입은 구명조끼는 몸을 더욱 조이는 것 같아 벗었다”고 말했다. 물이 코끝까지 차오르자 이들은 벽에 고정된 선반을 딛고 올라섰다. 심 씨는 “계속 물이 들어와 ‘이대로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숨이 가빠지면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가 이들에게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줄어드는 산소만큼 배터리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너무 어두워 켰던 휴대전화 조명도 껐다. 집에 있는 가족 생각만 간절했다. 전화하고 싶었다. 이 씨는 “아내와 통화하고 싶었지만 행여 휴대전화가 방전될까 봐 못 했다. 친구들도 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전 8시를 넘어서자 친구 정모 씨(32)가 “물이 빠지고 있다”고 소리쳤다. 배터리 표시 막대가 한 개 정도 남은 휴대전화 조명을 비췄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던 물건이 드러났다. 30분쯤 흘러 선장실 문 쪽에서 “계세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있어요, 여기 있어요.” 이들은 울부짖었다. 해경 잠수부가 문을 열고 나타나 이들에게 산소 호흡기를 물려줬다. 8시 35분 이 씨를 시작으로 정 씨와 심 씨가 차례로 구조됐다. 이 때가 8시 48분이었다.
비슷한 시간 이들 집으로 해경이 찾아갔다. 해경은 이 씨의 아내에게 선창1호 승객 명단을 내밀며 물었다. “이○○ 씨 보호자 되십니까.” “맞다”고 하자 해경은 선창1호 전복 사고 소식을 전하며 “수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사고가 새벽에 나서 아내는 소식을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 구조한 게 아니라 수색하고 있다는 말에 충격이 컸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정 씨는 사고의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 씨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뒤집힌 선실을 연상하게 만드는 캄캄하고 밀폐된 공간에 혼자 있지 못한다. 이 씨는 “또 다른 선실에 계셨던 분들, 결국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더 괴롭다. 나는 살아났지만 사고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말 힘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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