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사고 소식에…김장김치까지 꺼내온 영흥도 자원봉사 주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19시 07분


“오늘도 고생하실 테니 저희가 깨끗하게 정리해야죠.”

5일 낮 12시 인천 옹진군 영흥도 진두항 근처의 임시 천막. ‘영흥도 자원봉사단’이라고 쓰인 하늘색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빈 컨테이너를 청소하며 말했다. 차가운 날씨에 바다를 오가는 수색인력이 따뜻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실내식당을 만드는 중이었다. 컨테이너 옆 야외 천막에서 미역국에 쌀밥을 말아먹던 한 해경 대원은 이 말을 듣더니 “오늘 꼭 실종자를 다 찾아서 일손을 덜어드리겠습니다”라며 고마워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30분 뒤 마지막 실종자인 이모 씨(57)가 발견됐다.

소방대원과 해경, 특수구조대, 실종자 가족 등을 위해 만든 임시천막은 현장본부 설치와 거의 동시에 자리 잡았다. 사고가 난 3일 저녁부터 컵라면에 쌀밥이 등장하더니 김장철을 맞아 각자 집에서 만든 김장김치가 아이스박스에 담겨 속속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고 나온 재료와 적십자사 등이 긴급 지원한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콩나물국과 미역국도 제공됐다.

천막은 영흥도와 바로 옆 선재도 주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나자 ‘주민 비상연락망’이 한 차례 돌았다.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선착장으로 나왔다. 영흥도와 선재도는 3250가구, 인구는 6311명에 불과하다. 이 중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은 연인원 400여 명에 달한다. 첫날은 24시간동안 운영됐다. 영흥도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조모 씨(50·여)는 “일을 접어두고 3일째 봉사활동을 벌였다”며 “우리 센터 어린이 중 일부도 가족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봉사자는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조심스레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임시 대기 장소를 마련해 모포 등을 제공해주고 식사도 챙겨 전달했다.

지역공공기관도 힘을 합쳤다. 적십자사 직원 10여 명, 남동발전 자원봉사단 10여 명도 나서 이들을 도왔다. 한 낚싯배 업체는 “평소 배를 타던 단골 낚시꾼들이 한 사람당 4만 원씩 모아 십시일반 모은 돈”이라며 봉사단에 금일봉을 건넸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에 따르면 3일간 약 1500인분의 식사가 자원봉사 텐트에서 공급됐다.

낚싯배를 운영하는 선주들은 3일간 수색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3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선박이 투입돼 수색 작업을 벌였다. 4일에도 낚싯배 10여 대와 주민 40여 명이 바다로 나섰다. 의용소방대는 해경, 소방본부와 함께 조를 짜 ‘도보순찰조’를 운영했다. ‘도보순찰조’는 실종된 선장 오모 씨(70)를 찾은 당사자다.

이날 실종자 2명이 발견되면서 현장수습본부는 대부분 철수했다. 자원봉사에 나섰던 몇몇 주민들은 막걸리를 한잔씩 기울였다. 낚싯배 선장 원모 씨(55)는 “애초에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연료비도, 인건비도 받을 생각이 없다”며 “그저 실종자를 찾아서 다행일 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영흥도=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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