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마비된 것으로 생각해 평생 누워 지낸 20대 여성이 1주일 만에 걷게 됐다. 이 여성 가족은 대학병원이 처음 잘못 진단해 딸이 불구로 살았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병원 측에 1억 원을 배상하라는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다.
6일 대구지법 등에 따르면 만 3세가 되도록 제대로 걷지 못하던 서모 양(20)은 1999년 10월 부모와 함께 대구 모 대학병원을 찾았다. 경미한 보행 장애가 있으려니 했는데 진단 결과는 뇌성마비였다.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던 부모는 몇 년 동안 대구 다른 병원과 서울 유명 병원을 찾아다니며 조직검사 등을 했지만 ‘병명 확인 불가’ 또는 ‘진단 없음’ 판정을 받았다. 수차례 입원 치료도 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 중국 등 해외 의료기관도 가봤지만 소용없었다.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도 계속했지만 허사였다. 서 양은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거의 포기했을 무렵인 2012년 서 양 가족은 대구 수성구 한 재활병원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 물리치료사가 “뇌병변이 아닌 것 같다”며 서울의 재활전문 대학병원을 소개해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다. 서 양의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을 확인한 의료진은 뇌성마비가 아니라 ‘도파 반응성 근육긴장이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원인으로 알려진 희귀성 질환으로 ‘세가와병’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10세 이전에 나타난다. 신경전달물질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에 이상이 생겨 도파민이 적게 생성돼 발생한다. 다리가 꼬이며 점차 걷지 못한다. 근육 경직이 심해지고 마비가 온다. 오전에 좀 나아지나 싶다가 오후가 되면 심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도파민 약물을 주입하면 증상이 나아진다. 실제 서 양은 병원 측이 처방한 약을 먹고 일주일 만에 스스로 방에서 걸어 나왔다.
서 양 가족은 2013년 12월 뇌성마비로 진단한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구지법 민사11부는 올 10월 병원 측이 서 양 가족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며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서 양 보호자가 2009년 6월 환자 상태가 저녁에 더 심해진다고 해당 병원에 알렸지만 의료진이 환자를 마지막으로 진료한 2012년 12월까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것을 임상의학상 과실로 판단했다. 다만 1999년 초진 당시 의료기술 및 환경으로는 세가와병이라고 진단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전문가들은 세가와병 증상이 뇌성마비나 파킨슨병과 비슷해 진단이 까다롭다고 말한다. 세가와병은 2013년 소아신경학 교과서에 소개됐다.
병원 관계자는 “초진 당시 의료 환경의 문제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한 기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송구스러운 마음이다. 앞으로 희귀성 질환에 더욱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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