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교육부는 막대한 재정부담으로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꺼리는 사학들에 ‘전기에 학생들을 우선 선발하게 해 줄 테니 자사고가 돼라’고 설득했다. 자사고를 통해 고교평준화의 획일성을 극복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젠 갑자기 고교서열화가 문제라며 전기 선발권을 박탈한다고 한다. 이게 백년지대계인가. 왜 교육을 정치에 이용하느냐.”
‘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상산고 설립자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80·사진)은 1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며 “이번 개정안은 개인의 능력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절대적 평등만을 지향한 후진적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지난달 교육부는 외고·국제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이들 학교의 전기 학생 선발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홍 이사장은 6일 A4용지 19장에 달하는 반대 의견서를 교육부에 냈다. 상산학원을 비롯한 자사고들은 행정소송 및 위헌소송도 불사할 방침이다.
홍 이사장은 “정부 주도로 시작한 자사고는 오랜 공론화 과정을 밟고 8년간의 시범운영을 거쳐 정착된 지 10년이 채 안 된다”며 “새 정부는 교육관계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사실상 이를 폐지하려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 개정안에 따르면 외고·국제고·자사고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학생은 다른 일반고를 지원하지 못한 채 강제 배정받는다.
홍 이사장은 “정부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자사고 특성상 미달되는 자사고는 심각한 재정부족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산고만 해도 지난 15년 동안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440억 원을 출연했고, 190억 원을 들여 기숙사를 짓는 등 인적·물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며 “이런 와중에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신뢰보호의 원칙’을 저버린 처사”라고 꼬집었다.
또 홍 이사장은 “이번 개정안으로 학교가 아니라 사교육이 만들어낸 ‘강남 8학군’ 등이 부활할 것”이라며 “고교 교육의 하향 평준화, 공교육의 황폐화, 그로 인한 사교육 팽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진정 고교서열화를 막기 원한다면 일반고에도 인적·물적 투자를 늘려 자사고와 같이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이념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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