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주의 날飛]겨울이 오면 비행기는 흔들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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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2월 12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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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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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이 기승입니다. 12일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으니, 이정도면 ‘맹추위’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날이 추우면 고생이죠. 사람은 껴입어도 찬 공기가 파고들어 고생하고, 자동차는 시동이 안 걸려 고생합니다. 그럼 자신의 일생 중 대부분을 영하 50도 공기 속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어떨까요.

하와이안 항공의 기내 주문형비디오시스템(AVOD)에 표시된 항공기 외부 온도. 해발 10km보다 높은 상공의 외부 온도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집니다. (자료 : SANspotter.com)
하와이안 항공의 기내 주문형비디오시스템(AVOD)에 표시된 항공기 외부 온도. 해발 10km보다 높은 상공의 외부 온도는 영하 50도 아래로 떨어집니다. (자료 : SANspotter.com)

결론부터 말하면 비행기도 겨울이 되면 고생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국적을 받은 비행기들은 저 아래 동남아 같은 곳의 비행기보다 훨씬 더 고생합니다. 이유는 바람 때문이죠. 겨울만 되면 한반도 상공에 너무너무 강한 바람이 불고, 이 바람 속이나 주변에서 ‘터뷸런스’라고 부르는 난기류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는 비행기도 고생, 조종사도 고생, 타고 있는 승객도 고생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하늘은 겨울철 비행기가 자주 흔들리기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2003~2008년 사이 계졀별로 한국 상공에서 발생한 청천난류 발생 횟수. (자료 : 연세대 대기과학과 논문)
2003~2008년 사이 계졀별로 한국 상공에서 발생한 청천난류 발생 횟수. (자료 : 연세대 대기과학과 논문)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높은 하늘을 매우강한 ‘제트기류’가 휘감고 지나가서죠. 오늘처럼 추운 날, 우리나라 높은 상공(약 10km)에서 부는 제트기류의 속도는 시속 100~150마일입니다. 이 마일은 미국에서 쓰는 단위가 아니라 우리가 ‘해리’라고 부르는 ‘항공·해운마일(nautical mile)’입니다. 1해리는 약 1.852km. 그러니까 한겨울 우리나라 상공에는 최대 시속 270km가 넘는 바람이 항상 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017년 12월 12일 우리나라 상공(약 9km)을 흐르는 제트기류. 파란색의 바람 세기는 시속 90~180km, 초록색의 바람 세기는 180~270km 정도입니다. (자료 : 기상청)
2017년 12월 12일 우리나라 상공(약 9km)을 흐르는 제트기류. 파란색의 바람 세기는 시속 90~180km, 초록색의 바람 세기는 180~270km 정도입니다. (자료 : 기상청)

이런 제트기류 근처에서는 난기류가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미리 예보하기도 어렵고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는 ‘청천난류(淸泉亂流)’가 많이 생기죠. 이런 지역을 통과하면 대비할 여유도 없이 비행기가 크게 흔들릴 수 있고, 좌석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지 않고 있다가 부상을 당할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 2월 13일 인천을 출발해 중국 톈진(天津)으로 향하던 국적 항공사 여객기가 이런 청천난류에 휩쓸려 갤리(객실 승무원이 식사나 음료 등을 준비하는 공간)에서 일어선 채 업무를 보던 승무원 2명이 발목이 부러지고 허리가 삐는 등의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관련 내용을 조사한 적도 있습니다.

2017년 12월 12일 동아시아 지역 상공 9km에서 흐르는 제트기류.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굽이치면서 흐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7년 12월 12일 동아시아 지역 상공 9km에서 흐르는 제트기류.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굽이치면서 흐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공에서 이런 난류가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상공에서 흐르는 제트기류가 전 세계적으로 봐도 강한 편인데다 굽이쳐 흐르는 이유도 있습니다. 제트기류가 굽이쳐 흐르는 곳 근처에서는 난류가 자주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죠.

비행기가 흔들리면 일단 불편하고, 심하면 무섭습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이런 청천난류를 최대한 피해서 비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보도 어렵고, 레이더에도 나타나지 않는 청천난류를 조종사들은 어떻게 피해갈까요.

조종사들은 비행기가 흔들리는 지역을 통과하면 관제사와 다른 조종사에게 정보를 알려줍니다. PIREP(PIlot REPort·조종사 보고)라고 부르는 이 보고는 난류 예보 적중률을 높이는 데도 귀하게 쓰입니다.
조종사들은 비행기가 흔들리는 지역을 통과하면 관제사와 다른 조종사에게 정보를 알려줍니다. PIREP(PIlot REPort·조종사 보고)라고 부르는 이 보고는 난류 예보 적중률을 높이는 데도 귀하게 쓰입니다.

비결은 ‘소통의 힘’입니다. 앞서 간 비행기가 예측 못 한 난류 지역을 통과할 경우 이 비행기 조종사는 관제사에게 “어느 지역 어느 고도에서 비행기가 어느 정도로 흔들렸다”고 알려줍니다. 주변을 비행하는 비행기는 이 통신을 함께 들으면서 미리 대비할 수 있습니다. 또 관제사는 앞으로 근처를 통과할 비행기가 이 지역을 피할 수 있도록 유도하죠. 마지막으로 조종사가 보고한 모든 난류 정보는 항공기상청으로 모여들어 난류 예측 연구에 활용합니다.

청천난류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름 모양. 공기가 뒤섞인 모양을 따라 흘러 돌돌 말린 톱날 형태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자료 : 항공기상청)
청천난류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름 모양. 공기가 뒤섞인 모양을 따라 흘러 돌돌 말린 톱날 형태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자료 : 항공기상청)

정확하진 않지만 구름 모양을 보고 예측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늘에 위 사진 같은 구름이 생겨 있다면 근처에서 난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난류 때문에 공기가 뒤섞인 모양을 따라 구름이 톱니바퀴 모양으로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보잉 737기 조종석에 장착된 항로 지도. 노랗고 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기상 레이더가 포착한 구름입니다. 조종사는 이 구름들을 가급적 피해서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자료 : 위키피디아 미디어자료실)
보잉 737기 조종석에 장착된 항로 지도. 노랗고 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기상 레이더가 포착한 구름입니다. 조종사는 이 구름들을 가급적 피해서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자료 : 위키피디아 미디어자료실)

난류가 발생하는 원인은 또 있습니다.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름이 위아래로 두껍게 끼어 있다면, 그 안에서는 십중팔구 심한 난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레이더에 잡히기 때문에 조종사가 알아서 피해갑니다.

높은 산이 있는 곳에서도 강한 상승기류가 생기기 때문에 공기가 뒤섞여 난류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는 비행기가 나는 높이에 비해 비교적 산이 낮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네팔 등 높은 산이 많은 곳에서 비행기가 난류를 만날 경우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난류에 휘말리면 비행기 고도가 급격히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산악지대에서는 대처할 수 있는 공간 여유가 부족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히말라야산맥 위로는 비행기들이 되도록 날지 않고, 항로도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네팔 북쪽 히말라야 산맥 근처의 항공 지도.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실선)가 다른 지역에 비해 거의 없습니다. 산에 부딪쳐 하늘로 올라가는 난류가 산악지역 항로가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네팔 북쪽 히말라야 산맥 근처의 항공 지도.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실선)가 다른 지역에 비해 거의 없습니다. 산에 부딪쳐 하늘로 올라가는 난류가 산악지역 항로가 없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렇다고 비행기를 탔다가 좀 많이 흔들린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난류에 흔들리는 비행기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다만 ‘딩’ 하는 경보음과 함께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지면 꼭, 꼭 자리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야 한다는 점만 잘 실천하시면 됩니다. ‘청천난류’는 예고 없이 찾아오니 자리에 앉아 계시는 동안은 계속 좌석벨트를 메고 계시는 게 좋다는 ‘공자님 말씀’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비행기에서 이 표시등이 켜지면 꼭 좌석벨트를 잘 조여 매셔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이 표시등이 켜지면 꼭 좌석벨트를 잘 조여 매셔야 합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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