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수많은 양심들이었다.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 씨의 죽음 앞에서 단 한 명이라도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곳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라’는 정권의 보도지침에 저항한 기자들, ‘시키는 대로 사망 원인에 ‘심장마비’ 네 글자만 적으라’는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의사, 사체를 부검도 하지 않고 화장하려는 경찰을 제지한 검사….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은 영화라기보단 담백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자극적인 고문 장면이나 관객 몰이를 위한 상업적 미끼를 대부분 쳐낸 대신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팩트를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특히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는 당국에 맞서 집요하고도 용기 있게 진실을 캐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노력이 영화 속에서 조명됐다. 당시 서울대생이 경찰 조사 도중 ‘탁치니 억하고’ 사망했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이 사건이 물고문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건 동아일보의 1월 16일자 ‘대학생 경찰 조사받다 사망’이란 특종 보도를 통해서였다.
당시 주요 신문들이 정권의 보도지침 탓에 ‘쇼크사’ 수준의 보도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동아일보가 고문치사로 뒤집는 특종을 한 것이다. 영화에 수십 명의 기자가 등장하지만 그중 배우 이희준이 연기한 동아일보 고 윤상삼 기자가 가장 비중 있는 기자 역할로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기자의 보고를 받은 동아일보 사회부장이 “대학생이 고문받다 죽었는데 이런 보도지침이 무슨 소용이냐!”고 외치며 보도지침이 적힌 칠판을 지우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동아일보는 당시 정권의 ‘보도지침’을 무시했다. 1월 16일에 의사 오연상 씨의 ‘고문 의심’ 증언을 담은 특종 기사를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5단으로 키워 보도했고, 1월 19일자에서는 전체 12면 중 6개 면을 박종철 사건 기사로 뒤덮으면서 당국의 보도지침을 일거에 깨부쉈다.
당시 황열헌 동아일보 기자는 타사 기자들이 ‘기사도 안 나갈 텐데, 뭐 하러 가느냐’고 하는 와중에도 박 씨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 화장터를 취재해 ‘창(窓)―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이’(1월 17일자)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고, 6월항쟁을 상징하는 플래카드에도 쓰였다. 연쇄 특종은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폭로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남시욱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라고 했다 한다.
이처럼 1987년 1년간의 장기 탐사 보도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동아일보 기자들의 노력은 영화 속에서는 ‘윤 기자’라는 캐릭터로 형상화됐다.
앞서 영화 ‘지구를 지켜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영화적 스펙터클보다는 영화의 진정성을 울림 있게 전달하고 싶었다”며 “1987년 양심의 소리를 내고 길거리에 나와 싸운 분들을 생각하며 만든 영화”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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