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vs 주민 맞불시위… 전쟁터로 변한 창동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도봉구 미숙한 밀실 행정 논란

서울 도봉구 지하철 1, 4호선 창동역 2번 출구에서는 한 달 보름째 매일 저녁 노점상 재입점을 반대하는 주민들(아래쪽 사진)과 이에 대응하는 전국노점상총연합회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서울 도봉구 지하철 1, 4호선 창동역 2번 출구에서는 한 달 보름째 매일 저녁 노점상 재입점을 반대하는 주민들(아래쪽 사진)과 이에 대응하는 전국노점상총연합회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올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12일 오후 서울 도봉구 지하철 1, 4호선 창동역 2번 출구. 퇴근길 시민이 몰리는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했다. 검은색 조끼를 맞춰 입은 수십 명이 ‘주민들과의 상생을 원합니다’ ‘노점은 문화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꺼내들었다. 여기서 불과 3m밖에 떨어지지 않은 출구 옆 주차장에는 ‘교각 밑 노점 재설치 결사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주민 100여 명이 모였다. 서로를 향해 “노인네들이 때리면 이제 맞고만 있지 마. 전쟁이야!” “불법 저지르는 범죄자 놈들이 뭐가 잘났다고!” 같은 험한 말이 오갔다.

한 달 보름째 창동역 2번 출구 주변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이곳에서 장사하던 노점상들과 이들의 ‘재입점’을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대립이 점점 심해지면서다. 결정권을 가지고 중재를 맡아야 할 도봉구가 미숙한 행정으로 오히려 틈을 더 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동역 2번 출구와 고가 철로 기둥 주변에서는 30년 넘게 노점 50여 개가 영업을 했다. 곱창 등 소소한 먹을거리를 안주삼아 술도 마실 수 있는 포장마차가 주를 이뤘다. 외지인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지역 명물 역할도 했지만 도로점용료를 내지 않는 불법이었다. 2008년에는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던 노점에서 불이 나기도 했다.

도봉구는 수차례 철거를 시도했지만 노점상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무위로 돌아갔다. 노점에서 생기는 쓰레기 문제와 취객의 구토, 고성방가에 시달리던 주민의 민원도 늘어갔다. 문화시설 ‘플랫폼창동 61’ 개관, 박원순 서울시장의 민자역사 사업 정상화 약속 등으로 지역 개발의 물꼬가 트이면서 창동역 주변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도봉구는 예산 13억 원을 들여 이곳을 새로 단장하기로 하면서 절충안을 택했다. 올 8월 전국노점상총연합회(전노련)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조건을 달았다. △환경개선사업 기간 노점 일단 철수 △사업 완료되면 재입점하되 기존 천막보다 작은, 규격화된 부스 사용 △점용료 납부, 재산 공개, 실태조사 수용 등이었다. 구에서는 노점을 위한 상하수도 및 화장실 설치도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주민들이 깨끗해진 창동역 주변에 노점이 다시 들어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주민들이 결성한 ‘불법노점상 결사반대 대책위원회’ 이난희 부위원장은 “9월 한 구의원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주민은 구와 전노련이 맺은 재입점 협약을 알지 못했다. 동네 입구인 창동역이 30년 만에 겨우 깨끗해졌는데 다시 불법 노점을 들일 순 없다”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주민 반대로 지난달 예정된 재입점이 미뤄져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고 주장한다. 전노련은 원래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며 맞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 권혁두 노점상북부연합회 창2지부장은 “노점상 입장에서는 장사를 할 수 있는 한 양보를 다했다. 주민들이 우리 사정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재입점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양쪽은 서로 조금도 물러설 수 없다고 하는데 갈등의 불씨를 만든 도봉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도봉구 관계자는 “노점 재입점 협약은 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불가피했다. 아직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뾰족한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법 노점상을 방치했다며 이동진 도봉구청장을 직무유기로 경찰에 고발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창동역#지하철#노점#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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