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2013년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사진)에게 ‘영유아 교육 보육 통합 모델안 개발에 관한 연구’를 맡겼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지금 정부 정책 연구보고서 공유시스템(PRISM)에 비공개로 남아 있다. ‘관계 기관 간 내부 검토’가 이유다.
윤 교수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한 유보통합 같은 사안일수록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사회적인 논의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인 감시를 피해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부처 간 칸막이 문제에 대해 윤 교수는 부처-전문가집단-업계의 ‘이해관계 연결망’을 지적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평가지표를 통일하는 작업만 해도 각각 유리하고 불리한 조항이 있고, 각각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갈등이 심각하다고 했다. 윤 교수는 “부처 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부처가 민간에 휘둘리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유아교육과 졸업생이 유치원에 가고, 보육학과 졸업생이 어린이집에 가는 구조에서 전문가인 교수들은 업계로 진출한 제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
유아교육이나 보육처럼 예산이 급격히 늘어났으나 전문가의 폭이 좁은 분야일수록 부처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윤 교수는 “공무원이 당장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현장 지식이 없으면 소수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원죄’도 있다. 2000년대 초반 보육 투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공급의 진입장벽만 낮추고 퇴출 경로를 정비하지 않았다. 질을 따지지 않고 양만 늘려서 거대한 이해집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 교수는 유보통합을 위해 ‘일관성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하며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영유아기 인적 자본이 국가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지 빨리 깨달은 스웨덴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선 유보통합이 이뤄졌다”며 “두뇌가 주로 발달하는 영유아기에 ‘좋은 돌봄과 좋은 교육’을 서울 중산층 아이만 누린다면 20년 후에는 나라가 계층별, 지역별로 분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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