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미로찾기… 표시도 없이 되레 ‘통제구역’ 써놓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3일 03시 00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서울-제천 대형 사우나 등 8곳 점검

비상구에 옷 걸어놓고 조리기구 쌓아놔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지하 1층 사우나 비상구를 옷이 
막고 있다. 비상구 앞은 의류매장이다(왼쪽 사진). 이 사우나 조리실 내부 비상구 앞에는 냄비, 밀가루 등이 가득 쌓여 있어 
비상구로 접근하기 어렵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비상구에 옷 걸어놓고 조리기구 쌓아놔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지하 1층 사우나 비상구를 옷이 막고 있다. 비상구 앞은 의류매장이다(왼쪽 사진). 이 사우나 조리실 내부 비상구 앞에는 냄비, 밀가루 등이 가득 쌓여 있어 비상구로 접근하기 어렵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우나. 3층 남탕을 둘러보던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330m² 크기의 사우나를 10분 가까이 둘러봤는데 비상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 중앙 벽에 부착된 피난 안내도엔 ‘현 위치’ 표시가 없었다.

건물 구석 흡연실을 지나 좁은 통로로 들어가자 그제야 철문이 나왔다. 문을 열자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였다. 비상구 표시가 없거나 ‘통제구역’이라고 적힌 문도 있었다. 박 교수는 “불이 나면 현장은 아비규환”이라며 “평소에도 이렇게 찾기 힘든 비상구와 대피로는 화재 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로 숨진 29명 중 20명의 시신이 발견된 여성 사우나처럼 비상구가 있어도 사실상 무용지물인 건물은 부지기수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2일 서울과 제천시의 대형 사우나와 스포츠센터 8곳의 비상구를 직접 확인한 결과 모두 ‘무늬만 비상구’였다.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야 하거나 구석에 있어서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사우나 겸 찜질방. 대형 휴게실 한쪽에 비상구를 나타내는 녹색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하지만 대형 온열기가 비상구 문의 절반을 가로막고 있었다. 온열기 뒤쪽으로 힘겹게 몸을 집어넣어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바깥쪽에서 잠겨 있었다. 열쇠 없이는 나갈 방법이 없었다. 단 몇 초가 생사를 가르는 화재 발생 시 탈출을 지연시켜 대량 사상자를 낼 것이 우려됐다.

제천시 주택가의 한 스포츠센터 2층 사우나에는 비상구는 있었지만 ‘비상구’ 표시가 없었다. 문을 여니 바로 허공이었다. 건물 외벽 3m 높이에 계단도 없이 비상구 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건물 관리인은 “평소에 나갈 수 없도록 잠가놨다가 이번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뒤 부랴부랴 열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우나와 스포츠센터의 비상구 주변 공간은 사실상 창고나 흡연실로 쓰이고 있었다. 서울 신촌의 한 헬스클럽 지하 3층 스크린골프장의 비상 통로는 문 2개를 열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첫 번째 문을 열자 운동화와 운동복, 청소도구가 가득 담긴 대형 비닐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두 번째 문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지하 1층 사우나에는 비상구가 세 개나 있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조리실 내부 비상구 앞에는 큰 냄비 등 조리도구가 가득 쌓여 있어 비상구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휴게실의 비상구 앞은 아예 의류 판매장이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 앞엔 의류 매장용 옷걸이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종로구 한 찜질방 지하 2층 비상문은 20∼30cm밖에 열리지 않았다. 문 바로 뒤에 플라스틱 의자와 선풍기 등이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 4월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 안전 불량사항이 적발된 290개 영업장 대부분은 유도등이나 감지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구가 닫혀 있어 과태료를 부과받은 곳은 29곳이었다.

박 교수는 “대형 사우나와 찜질방은 좁은 방이 많은 구조라 화재 시 대피로에서 먼 방에 들어갔다 갇혀 변을 당하기 쉽다”며 “다른 다중이용시설보다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최지선·김예윤 기자
#비상구#제천#화재#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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