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은 해외에서도 다사다난한 해였다. 할리우드발(發) 성폭력 고발 움직임이 전 세계로 퍼졌고, 영국 프랑스 등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정치 흐름을 만들어냈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겨루기로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주변국들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주요 사전 출판사와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 등이 꼽은 ‘올해의 단어’를 통해 국외 주요 이슈를 돌아봤다.
○ ‘페미니즘’ 바람으로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고발 줄이어
미국 영어사전의 원조로 꼽히는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최근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feminism)’을 선정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주목받은 데에는 할리우드 영화계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스캔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영화계 권력’을 이용해 약 30년에 걸쳐 애슐리 저드 등 여배우와 여직원들을 성추행해 온 사실이 10월 초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등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도 언론에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메리엄웹스터 측은 “페미니즘 단어 검색량이 지난해 대비 70%가량 증가했다”며 “와인스틴 성추문 이후 페미니즘이 더 주목받는 단어가 됐다”고 평가했다.
와인스틴 스캔들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을 통해 지구촌으로 번져 나갔다. 배우 얼리사 밀라노의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이 트윗에 ‘미투’라는 답장을 써달라”는 트윗에 24시간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뒤따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해시태그와 함께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각계각층에서 ‘제2의 와인스틴’이 속속 적발돼 비난을 받았다. 넷플릭스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연 케빈 스페이시와 유명 배우 더스틴 호프먼, 코미디언 루이스 C K 등 여러 할리우드 인사가 구설에 올랐으며, 미국 유명 토크쇼 진행자였던 찰리 로즈, 맷 라워는 성추행 혐의로 해고됐다.
미투발(發) 피바람은 정계도 덮쳤다. 앨라배마주 연방 상원의원 보궐선거(12월 12일)에 나선 로이 무어 공화당 후보는 미성년자 성추문 의혹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인 앨라배마를 25년 만에 민주당에 내줬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도 성추문에 휘말린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과 데이미언 그린 부총리가 사퇴했다. 대선 때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과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 16명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의회에 공식 조사를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발이 잇따랐다. 지난달 인테리어 가구업체 한샘의 신입 여직원이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이후 사내 성폭력 피해를 봤다는 직장 여성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권력을 쥔 자들의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 젊은이들의 적극적 참여로 정치 지형 바꾼 ‘유스퀘이크’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2017년 올해의 단어는 ‘유스퀘이크(youthquake)’다.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로 옥스퍼드 사전은 “젊은이들의 행동과 영향력으로부터 야기된 명백한 문화 정치 사회적 격변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올해 이 단어는 사용 빈도가 전년 대비 401% 늘었다.
유스퀘이크가 가장 많이 사용된 때는 6월 영국 총선이다. 조기 총선은 집권당인 보수당이 압승을 예상하고 던진 승부수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보수당 의석이 13석 줄었고 야당인 노동당 의석이 30석 늘었다. 그 중심에 젊은층이 있었다.
청년들은 지난해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때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18∼24세의 75%가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노년층이 브렉시트에 몰표를 던지면서 결과는 가결이었다. 반격에 나선 젊은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EU와의 단일 시장을 유지하는 온건한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노동당에 표를 몰아줬다.
유스퀘이크는 영국 밖으로도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30대 정상이 다수 전면에 등장했다. 만 39세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5월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하며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3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오스트리아에선 10월 총선과 두 달간의 연정 협상을 통해 이달 16일 31세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가 탄생했고, 젊은층의 지지에 힘입어 37세의 여성 저신다 아던이 10월 뉴질랜드 총리에 올랐다. 아일랜드 우크라이나에서도 30대 총리가 탄생했다. 이 30대 지도자들은 자유롭고 실용적인 노선과 과거 정당 정치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의 여론을 우선시하는 유연한 정치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올해 16차례 미사일 발사로 일본을 공포에 떨게 만든 ‘北’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의 한자’로 ‘北(북)’을 선정했다. 연중 지속됐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일본 사회가 공포에 떨었기 때문이다. 올해 북한은 16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중 2번은 홋카이도(北海道)를 넘어갔고, 5번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졌다.
특히 머리 위로 미사일이 지나갔다는 사실은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미사일 대피 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도쿄(東京)도 내년 도심에서 미사일 피란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북한의 위협은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학원 스캔들로 위기에 빠진 아베 총리는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불안심리를 자극해 결국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아베 총리는 유세 기간 연설 때마다 북한의 위협을 언급해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김정은의 연이은 도발이 죽어가던 아베 총리를 살린 셈이다.
북한의 위협 증가로 평화헌법 개정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아베 정권은 전쟁과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할 방침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헌법 시행 70주년 인터뷰에서 “2020년을 새 헌법이 시행되는 해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협회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고 있으며 뽑힌 한자는 교토(京都)의 유명 사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의 주지 휘호를 통해 발표된다. 지난해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의 선수들의 활약, 금발인 트럼프 미 대통령의 당선 등을 이유로 ‘金(금)’이 선정됐고, 2015년에는 안보법 파동으로 ‘安(안)’이 선정됐다.
○ ‘이슈메이커’ 트럼프 대통령 연관 단어도 선정돼
1월 취임 이후 뉴스를 몰고 다니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단어들도 올해의 단어로 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류 언론들의 비판적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반박해 왔는데 콜린스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가짜 뉴스(fake news)’를 선정했다. 미국 인터넷 사전 사이트인 ‘딕셔너리닷컴’은 ‘공모한(complicit)’을 선정했다. 3월 미국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아버지의 문제 행동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며 이 단어를 이용해 꼬집었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populism)’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며 “세계의 리더들이 이민, 무역, 민족주의, 경제적 불만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현상을 잘 나타낸 단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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