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전기 먹통으로… ‘2층 진입 지시’ 구조대원에 전달 안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9일 03시 00분


제천 화재 엉뚱한곳 수색 이유 드러나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에 불이 났을 때 첫 소방대가 도착한 건 최초 신고 7분 만인 오후 4시. 주로 불을 끄는 진압대원이었다. 그로부터 6분 후 건물 내부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대가 도착했다. 구조대는 도착 1분 후 3층에 매달린 사람을 구하려 에어매트를 설치하다 건물 뒤편 비상계단을 발견했다. 이곳은 아직 불길이 미치지 않았다. 한 층만 올라가 비상구를 열면 2층 여자 사우나가 있다. 당시 안에는 20명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소방대 도착 직전인 오후 3시 59분경 여탕에 있던 한 여성은 “숨을 못 쉰다. 2층으로 와 달라”고 신고했다. ‘빨리’라는 말을 79차례나 외칠 만큼 다급한 전화였다. 상황실 근무자는 즉각 현장 대원들에게 “2층으로 진입하라”고 무전을 보냈다. 하지만 비상계단을 찾은 구조대원은 2층이 아니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골든타임이 지났다.


○ 무전만 됐어도 살릴 수 있었다

당시 구조대를 포함한 현장 소방대원들은 휴대용 무전기가 먹통이라 상황실 무전을 듣지 못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2층 대신 엉뚱한 곳을 수색한 배경이다. 구조대는 지하 1층 수색을 마친 오후 4시 30분경 소방서장으로부터 “2층에 사람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2층에 사다리를 설치했다. 이어 통유리를 깬 뒤 진입했지만 생존자 구조는 늦은 상태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장은 28일 동아일보와 만나 “출동 당시 ‘1층 화재’라는 것 말고 아무 정보가 없었다. 당연히 모든 층에 사람이 갇혔을 거라 판단하고 1층 화재 때 가장 위험한 지하실부터 진입했다. 2층에 사람이 많다는 걸 들었다면 무조건 먼저 들어갔을 거다”라고 말했다.

앞서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에선 2층 여탕에 10명 넘게 고립됐다는 첫 신고 후 즉시 현장 출동대에 무전을 보냈다. ‘구조대 빨리 2층으로. 여자. 여자. 2층’. 하지만 현장에선 아무 응답이 없었다. 무전을 듣지 못한 탓이다. 다급한 상황실은 오후 4시 4분 현장 부(副)대장 역할인 화재조사관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2층 상황을 알렸다. 화재조사관은 “현장 구조작업을 벌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무전기가 먹통이라 현장 소방관들에게 2층 상황을 알리지 못했다.

신고가 쇄도하자 상황실은 2분 뒤 재차 화재조사관에게 전화로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화재조사관은 “농연이 심해 2층 진입이 어렵다”고 답했다. 상황실이 오후 4시 10분 세 번째 전화를 걸어 “3, 4층 사이에 구조 대상자가 있다”고 전하자 화재조사관은 “알고 있다. 구조작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화재조사관은 현장 지휘관인 진압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려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당시 진압대장도 무전이 되지 않아 휴대전화로 진압요원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진압대장은 3층에서 현장을 수색하다 우연히 화재조사관을 만났다. 그제야 2층 여탕에 사람들이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압대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휴대용) 무전기는 교신 자체가 안 돼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불 끌 인원이 부족해 지휘관인 내가 직접 화재 진압에 나설 만큼 긴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화가 쏟아지고 무전이 안 들려 누가 어디에 있다는 걸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휴대용 무전기 자주 먹통

충북소방본부는 이번 화재 현장에서 휴대용 무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조사 중이다. 제천소방서 소방관들은 제천에 무전 신호가 닿지 않는 음영지역이 많아 평소에도 휴대용 무전기가 무용지물이었다고 토로했다. 진압대장도 현장에서 종종 휴대용 무전기가 먹통이라 휴대전화로 작전을 지시해 왔다고 했다.

휴대용 무전기는 음영지역에 따라 감도가 먹통일 때도 있지만 소방차마다 고정 설치된 차량 이동기지국 무전기는 늘 상황실과 교신이 잘된다. 하지만 1분 1초가 긴박한 상황에서 소방차에 앉아 무전만 듣고 있는 소방관은 거의 없다. 휴대용 무전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전으로 상황을 현장에 전파하는 상황실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119 출동은 광역별 소방본부가 신고를 접수한 후 해당 지역별 소방서에 화재·구조·구급 출동을 지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소방당국이 2006∼2014년 예산 501억 원을 들여 전국 소방서 상황실을 17개 시도별 소방본부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충북권 전체에 출동 지령을 내리는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은 청주에 있다. 화재가 난 제천 현장과 87.5km 떨어져 있다. 상황실 근무자가 제천의 지역 사정을 잘 알기 어렵다. 제천의 한 소방관은 “이전에 소방서마다 상황실을 뒀을 때는 근무자가 지역 사정에 도통해 정확한 지령을 내렸는데 광역별로 통합된 이후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제천=김배중 wanted@donga.com·김동혁·조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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