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성 1명은 아침에 일어나 로션 샴푸 등 약 12가지 제품을 얼굴과 몸에 사용한다고 한다. 이 속에 든 화학물질은 120가지가 넘는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현대인은 수백 종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살충제 잔류 계란, 독성 생리대 사건 등과 함께 ‘케미컬 공포’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각종 생활용품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노케미’족이 되는 것이 정답일까? 전문가들은 ‘무조건 안 쓰기’보다는 ‘잘 알고 쓰기’가 정답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화학물질’이 ‘위해물질’인 것은 아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유해성(hazard)과 위해성(risk) 개념부터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해성’은 화학물질 본연의 독성을 뜻한다. 화학물질이 신체에 들어오는 경로에 따라 유해성이 달라진다.
입,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노출되면 유해성이 매우 크다. 반면에 ‘위해성’은 해당 물질에 노출돼 나타나는 ‘건강 피해’ 정도다. 다이옥신은 유해성이 큰 물질이지만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는다면 위해성은 없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섭취나 흡입, 접촉하는 ‘양’에 비례한다.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아주 적은 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독성이 약한 물질도 많이 섭취하면 몸에 해롭다. 예를 들어 고기를 구우면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나온다. 벤조피렌을 피하려면 고기를 아예 굽지 말아야 한다. 즉 화학물질을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면 그 양에 대해 인식해야 사용 시 원칙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정부가 허용한 제품 속 화학물질 ‘기준치’ ‘허용치’만을 맹신하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제한속도가 시속 100km인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90km로 달린다고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반면 120km로 달려도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화학물질 기준치도 같은 원리다. 기준치는 독성은 물론이고 경제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정한 관리 기준일 뿐이다. 화학물질 독성은 개인차가 크다. 특정 화학물질에 대한 신체의 민감도가 다르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양도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내가 사용하는 생활제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 그 물질이 얼마나 유해한지, 나는 어떤 화학물질에 취약한지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개인의 노력에 맞춰 정부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자국 내 제품 속 화학물질과 관련된 ‘중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 같은 센터가 없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중독센터를 통해 소비자가 특정 제품을 쓰다가 눈이 아프거나 호흡기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바로 신고하고, 정부는 그 데이터를 모아서 대처한다”며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들에 책임을 묻고, 이에 기업들은 제품을 더 신중히 생산하면서 사회 전반에 화학물질 위험성이 줄어드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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