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인 스테파니 씨(30)와 함께 찾은 서울 중구의 한 대형면세점. 이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코리아투어카드’ 지정 사용처였다. 하지만 스테파니 씨가 카드를 사용하려 하자 직원은 카드를 처음 본다는 듯 도리어 “이게 어디에 쓰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코리아투어카드는 지난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방문위원회(방문위)가 내놓은 외국인 전용 관광카드다. 교통카드에 주요 관광지 할인 혜택을 더해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카드를 직접 사용해 보니 사용가능한 곳이 적고 혜택이 부족했다. 특히 정부가 올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외국인 방문객을 유치하는 대책으로 이 카드를 활용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관광객이 외면하는 졸속행정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쓰지도 못할 음료쿠폰 주는 투어카드
방문위는 코리아투어카드를 공항이나 항공기 안에서 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판매해 관광객이 쉽게 구입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 명동의 편의점 4곳에 들어가 문의했으나 “다른 편의점으로 가 보라”는 대답만 들었다. 전국 판매처가 527곳이지만 은행 항공사 일부 편의점 등으로 흩어져 있고 외국인이 판매처 정보를 찾기 어려워 구입이 어렵다.
자동판매기 관리도 소홀했다. 서울역 지하 3층의 자동판매기에서 5000원을 넣고 4000원짜리 카드를 샀으나, 거스름돈이 나오지 않는 일도 일어났다. 스테파니 씨는 “카드 판매처도 찾기 힘들고 자판기도 오작동해, 관광객으로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한 면세점에서는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으면 혜택을 줄 수 없다고도 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받은 혜택도 매장에 비치된 브로셔에 있는 할인쿠폰을 주는 게 전부였다. 다른 대형쇼핑몰에서는 쇼핑몰 내 2개 매장에서만 쓸 수 있는 무료음료쿠폰 1장을 줬다. 정작 매장에서는 “음료가 마감됐다”고 해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스테파니 씨는 “외국인에게 특별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라고 했는데 사실상 좋은 점이 없다. 솔직히 카드를 살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했다.
● 외국인 1.7%만 사용…가맹점 늘려야
출시 1년이 된 코리아투어카드 판매는 극히 저조하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109만3217명에 이르지만 같은 달 카드를 산 사람은 1만9389명으로 1.7%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쇼핑 축제인 ‘코리아그랜드세일’ 기간에 맞춰 급하게 만든 것이 투어카드의 한계를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관광카드임에도 관광지와 연계되지 않는 반쪽짜리 카드다. 김남조 한양대 교수는 “코리아투어카드는 가맹점이 대부분 쇼핑 코스로만 이뤄져 있어 매력이 떨어진다”며 “현지의 풍물을 느끼고 싶어 하는 관광객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카드라는 ‘플랫폼’만 만든 패착”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8월, 24억 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 코리아투어카드의 홍보를 강화해 대표적인 관광 패스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올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 카드를 적극 사용한다는 계획인 만큼, 미흡한 운영을 개선할 대책이 필요하다.
턱없이 부족한 가맹점을 늘리는 게 급선무다. 현재 코리아투어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은 전국 2239개 매장으로, 2만 개 이상의 가맹점이 있는 홍콩의 ‘옥토퍼스카드’와는 차이가 크다. 할인혜택도 10% 내외에 그친다. 김 교수는 “유명 관광지의 입장료를 50% 이상 할인해 주는 영국의 런던패스처럼 확실한 혜택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내국인들도 잘 찾지 않는 가맹점이 아니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에 대한 혜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난립하고 있는 관광 카드·패스를 통일할 필요도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카드 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서울, 전주 등 각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패스와 철도패스 등 각종 관광카드가 혼재돼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카드들을 통합해 한국을 대표하는 카드를 마련하고 흩어져 있는 혜택을 한 데 모은다면 코리아투어카드도 매력 있는 우리만의 관광 콘텐츠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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