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톡톡]“목숨 걸고 목숨 구하지만…이럴땐 슈퍼맨도 섭섭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16시 21분


20㎏이 넘는 장비, 뜨거운 불길, 연기 때문에 앞도 안 보이는 현장…. 소방관들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화재현장을 진압하고 사람들을 구조하고 구급환자를 구해냅니다. 매일매일 긴장감 속에 사는 소방관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 목숨 걸고 목숨 구합니다

“화재진압을 완료하고 나왔는데, 발 바로 옆에 부탄가스통이 있더라고요. 혹시나 그게 터졌으면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주임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당연히 위험한 상황에서도 들어가서 진압해야한다고 생각을 하시니까요.” -최승욱 씨(35·서울 동대문 소방서)

“지하 쓰레기 소각장에서 규모가 큰 화재였는데 현장에서 팀원과 떨어져 혼자 남은 적이 있었어요. 많이 당황했죠. 공기 호흡기에서도 소리가 나고 앞도 안 보여서 일단 땅바닥을 기어 다녔어요. 더듬더듬하면서 찾아보니까 수관(水管) 같은 게 깔려있더라고요. 끝까지 따라가서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죠.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임석재 씨(26·강동소방서 현장대응단 구조대)

“배에서 일어난 화재의 경우 폭발이 일어나서 사람한테 불이 붙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래 인명을 구조할 땐 소방관들이 구조할 사람들을 감싸 안고 나오는데 선박 화재는 통로가 좁아서 감싸 안고 나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팔이나 다리를 잡아당기는 경우가 많아요. 온몸에 불이 붙은 경우엔 잡아당기면 옷이 뜯어져 나가거나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일이 있죠. 그러면 다시 로프를 이용해서 구조합니다.” -류모 씨(59·부산시 25년차 소방공무원)

“의무소방 23개월, 지금 소방서에서 6개월 동안 출동을 셀 수 없이 나갔죠. 그러다보니 처참한 현장도 많이 봤어요. 신체 일부가 절단된 사람, 얼어 죽은 사람 등 많이 봤어요. 처음 봤을 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정신이 멍해져서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 이질감이 많이 들었죠. ‘내가 이런 현장 한 가운데 있다니’라는 생각이 먼저 납니다. 지금은 많이 보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처음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습니다.” -천상욱 씨(25·강남소방서 진압대원)

“2011년에 있었던 천호동 붕괴 사고 때 출동을 했어요.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0시간을 넘게 구조를 했었죠. 한 분이 건물 보에 다리가 깔린 상황이었는데 다리를 절단하기보다는 보를 들어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올렸더니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 생명을 잃었어요.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으면 살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서영수 씨(50·서초소방서 구조대 3대장)

● 뭉쳐야 산다

“많을 땐 하루에 3, 4건 정도 화재진압을 나갔습니다. 출근하면 항상 긴장상태예요. 언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까요. 큰 화재라고는 생각을 못한 고물상 화재나 음식점 화재도 커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직업이 소방관이다 보니 가족들이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죠. 그래서 가급적이면 집에는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에 ‘편하게 있다가 왔어’ 하고 안심을 시키죠.” -박모 씨(39·서초소방서 진압대원)

“소방 활동은 개인능력보단 팀워크가 중요해서 실습의 중요도가 높습니다. 100점 만점에 필기시험이 40점, 생활 점수가 10점이고 50점이 실습 점수일 정도죠. 그래서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을 체력’도 중요합니다. 때문에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예비 수험생으로써 필수 사항인 것 같습니다.” -문상인 씨(51·소방학교 교관)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님들의 살뜰한 보살핌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신임 대원들은 힘들어하는 면이 많아요. 현장의 처참한 환경을 본 뒤에는 후배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대화로 풀어내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거든요.” -황진규 씨(48·강남소방서 구조대장)

● 특이한 소방관

“2017년 4월에 실시한 몸짱 소방관 선발대회에서 입상해서 소방관 달력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대회에 참여한 이유는 달력 수익금이 의료 취약계층 화상환자에게 기부한다는 목적 때문입니다. 운동은 주로 출근 전, 퇴근 후에 했고 대회를 준비하는 4개월 동안은 지인들과도 얼굴을 못 볼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운동하면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제 작은 재능이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어 준비했습니다.” -성기현 씨(28·강서소방서 몸짱 소방관)

“한강에서 투신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하고 투신자가 발견될 때까지 수중을 수색하는 것이 수난구조대의 업무입니다. 요즘에 우리 구조대를 방송에서 불쌍하게 묘사했는데, 사실 수난구조대원들의 직업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물에 특화된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익숙한 업무이기도 하고, 스케줄 변동이 적어서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등 자기개발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거든요.” -윤진욱 씨(53·여의도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장)

“잠을 자는데도 밤에 언제 출동신고 벨이 울릴지 몰라서 편하게 잠을 못 잤어요. 벨이 울리는 대로 빠르게 소방차에 타야 하거든요.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20대 초반이고 추가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위험한 현장에 실전 투입되는 거라 항상 긴장되고 무섭죠. 조그만 실수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정확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려 노력했습니다.” -김의준 씨(28·의무소방 전역자)

● 소방관을 응원합니다

“저희 집 건물 주차장 뒤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버려서 비닐에 불이 붙어서 화재가 난 적이 있어요. 누워있는데 비상벨이 울리더라고요. 건물 안에서 담배 피는 사람이 있어서 종종 그러는데 창문 밖을 보니까 진짜 불이 나서 당황했었죠. 저는 전혀 낌새도 못 알아챘는데 5분도 안돼서 이미 소방차가 도착해 상황이 끝났더라고요. 내가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꼈고 소방관들이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어요.” -오기하 씨(29·서울시 관악구 거주)

“산불이 크게 나면 다음날 집에 오셔서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하실 때 마음이 쓰입니다. 밤 새고 소방서에서 편히 못 주무셨을테니까요. 다른 직업을 가진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버지도 집에서는 일 이야기를 잘 하시지 않기 때문에 별로 아는 게 없어요. 기사를 보면 남들보다 조금 더 공감하는 정도죠. 무조건 소방관 잘못으로 몰아가는 기사를 볼 때는 소방관가족 입장에선 많이 속상하죠.” -류모 씨(31·소방관 가족)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 기숙사에서 갑자기 경보기가 울려서 다들 급하게 나왔는데 알고 보니 화재대피훈련이었어요. 소방관들이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서 훈련이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미국인들은 화재에 경각심이 높고 대비훈련도 소방관들이 자주 해줘요. 심지어 요리하다가 연기가 좀 나도 경보기가 울리는데 제가 요리하다가 난 연기 때문에 난리난 적 있었죠.” -조형래 씨(26·대학생)

● 슈퍼맨도 섭섭해요

“소방도 일반직업처럼 파트가 나눠져 있어요. 화재진압, 구급, 구조 이렇게 나눠지고 내근하면서 일반 업무 보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무조건 다 하는 줄 알고 있죠. 사고현장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맞게 대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걸 보고 ‘소방관이 구조하러 가지 않는다고 뭐하냐’는 분들이 있어서 좀 서운하죠.” -주병철 씨(51·동대문 소방서)

“엠뷸런스 타고 가다보면 환자들끼리 얘기를 하는 게 들릴 때가 있어요. ‘어차피 공짜니까 구급차 이용하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본인들도 응급 환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편하니까 119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그런 게 황당하다기보단 안타깝죠. 저희를 더 다급하게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의 기회를 어떻게 보면 뺏어가는 거잖아요.” -김한샘 씨(40·동대문 소방서 구급대원)

“산악구조는 무조건 뛰어 간다고 빨리 가는 게 아니거든요. 산이라서 체력안배를 잘해야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속보로 가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산악대원이 걸어간다고 손가락질하시는 걸 보면 좀 속상하죠. 그리고 도착했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갔는데 ‘왜 이렇게 늦었느냐’, ‘이래서 공무원들은 안 된다’고 말하시는 걸 들을 때 속상하죠. 내 능력이 아직 모자라구나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이해를 못해주나 싶기도 해요. 저도 맘 같아선 순간이동을 하고 싶어죠.” -오맹교 씨(38·서울 소방본부 119 특수구조단 북한산 산악구조대 소방장)

“소방관은 면책권이 없어요. 구급차의 경우 차들이 비켜줘야 최대한 빨리 신고자에게 갈 수 있는데 안 비켜주는 경우가 많아서 접촉사고가 많이 일어나요. 그런 경우에 보험처리하고 출동차 운전자 교육을 시키는데 이게 기록에 남아서 약간의 불이익을 받아요. 소방관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정모 씨(50·서초소방서)

“시민들이 소방관을 너무 영웅으로 보는 거 같아요. 저희가 큰 화재에 뛰어 들어가서 양팔에 한 명씩 들쳐 업고 나오지는 못하거든요. 소방관이 슈퍼맨은 아니에요. 우리도 사람이고 지켜야할 가정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에요. 물론 전문 훈련을 받아서 화재나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이 있지만 인간이 불가능한 것들까지는 못해요.” -정광희 씨(54·서초소방서 지휘 3팀장)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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