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1도에도 훈훈, 한 달 전기료 6만8000원…국내 최초 ‘제로 에너지’ 주택단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4일 17시 21분


서울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14일 오후 8시. 서울 노원구 ‘EZ하우스’에 사는 박애라 씨(36·여)가 현관문을 열자 훈훈한 온기가 ‘훅’ 하고 퍼져나왔다. 박 씨는 “외출 후 돌아왔을 때 따로 보일러를 틀어놓지 않아도 실내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집에 들어서면 후끈한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여간해선 식지 않는 이런 온기가 그리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달 전기료 6만8000원 단지

EZ하우스는 국내 최초 제로 에너지 주택단지로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그동안 한 채씩 건립한 제로 에너지 주택은 많았지만 이를 단지로 조성한 건 EZ하우스가 처음이다. 국토교통부가 서울시, 노원구, 명지대학교 산학협력단 등과 함께 493억 원을 들여 지은 121채 규모 단지다.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돼 입주민 대부분이 행복주택 입주 요건을 갖춘 신혼부부나 노령층이다. 지난해 11월 20일 입주를 시작해 대부분 이사를 마쳤다. 지난달 7일 오픈하우스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입주민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20년 된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 EZ하우스로 이사한 이동욱 씨(36)는 “20개월인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 기저귀만 입혀놓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햇볕만으로도 실내가 데워져 보일러를 따로 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외풍이 적고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여름에는 블라인드를 쳐놓으면 외부 열기가 실내로 들어오지 않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이는 건축물의 단열 성능을 극대화하는 ‘패시브(passive) 설계’ 덕분이다. 특수 단열재와 3중 창틀 등을 이용해 내부 온기나 냉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 일반 건축물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61%까지 절약할 수 있다. 여기에 건물 외벽에 태양광 전지판을 배치하고 지하에는 지열을 난방에 활용하는 설비를 설치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로지 전력만 사용하게 설계돼 가스 배관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전기요금은 일반 주택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입주 후 실내 온도를 20도 밑으로 내린 적이 없는 박 씨의 한 달 전기료는 6만8000원. 이전에 살던 다세대 주택의 가스비와 전기료를 합한 금액의 절반 수준이다. 김 팀장은 “한 달 전기세가 2만4000원 나온 집도 있다”고 말했다.

김정현 노원구청 주택사업과 팀장은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낮이나 여름에 만든 잉여 전력을 주변 발전소로 보냈다가 이를 저녁이나 겨울에 끌어다 쓰기 때문에 1년 기준으로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비싼 공사비가 대중화의 걸림돌

국토부는 EZ하우스와 같이 외부 에너지 없이 살 수 있는 에너지 자립주택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지난달에는 경기 김포, 오산, 세종시 등에 제로 에너지 단독주택을 공공 임대 형태로 공급하는 ‘로렌하우스’ 홍보관을 열었다. 국토부는 올해 12월까지 전국에 로렌하우스 298채를 준공할 계획이다. 공공건축물은 2020년, 민간건축물은 2025년까지 제로 에너지 주택 건설을 의무화할 방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첫 번째로는 비싼 공사비다. 제로 에너지 주택은 일반 건물 대비 공사비가 30% 가량 더 든다. 따라서 임대주택이 아닌 일반 분양 아파트로 공급될 경우 그만큼 집값이 올라가게 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 정부가 비싼 분양가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해서 손해를 감소하면서까지 건설사가 제로 에너지 주택 공급에 앞장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술 개발도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패시브 설계를 적용해 지을 수 있는 건물 높이나 크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의 경우 단지 규모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세대수가 적으면 각 세대별로 부담해야 하는 단지 관리비, 경비 인력 고용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EZ하우스의 경우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입주민이 자체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건물을 관리하고 경비 인력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태양광 발전 효율 등을 높이는 등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련 분야 기술을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경제적, 기술적 여건아 안 되는 상황에서 제로 에너지 주택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수요자들이 외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제로 에너지#ez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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