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경력이 변호사와 동일? 공무원 호봉 반영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5일 03시 00분


1월 국무회의서 의결하면 시행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에서 상근(常勤)한 경력을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동안은 민간 경력으로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이나 박사학위 소지자같이 동일 분야의 전문 및 특수 경력만 호봉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은 동일하지 않은 분야의 시민사회단체 상근 경력도 호봉으로 인정한다.

인사혁신처는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공무원 보수규정’과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5일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이달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바로 시행된다.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애쓴 경력도 공직에서 인정받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 동일 분야 아니더라도 호봉에 반영

개정안에 따르면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 규정에 따라 등록된 시민단체에 한해 상시 근무(유급으로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한 경력을 공공기관 근무 경력 수준으로 인정해 호봉에 반영한다.

지원법 규정에 따라 호봉을 인정받는 시민단체로 등록하려면 공익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고 상시 구성원이 100명을 넘어야 한다. 최근 1년 이상 공익 활동 실적이 있어야 한다. 특정 정당 및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할 수 없으며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등록할 수 없다.

이 같은 규정을 충족하는 시민단체는 지난해 9월 현재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서울흥사단, 한국자유총연맹, 서울YMCA를 비롯해 1만3833개다.

개정안이 의결되면 이들 시민단체 출신이 공무원 신분이 됐을 때 경력이 호봉으로 인정된다. 현행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르면 민간 기업 출신은 동일 분야가 아니면 아예 호봉을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동일 분야라 하더라도 자격증이나 학위 소지 여부, 직책 등에 따라 민간 기업 경력을 100% 인정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공무원이 돼서 맡은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시민단체에서 일했다면 경력을 100% 인정받을 확률이 높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경우라도 경력의 최대 70%까지는 호봉 인정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직 공무원의 과거 시민단체 경력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또, 시민단체에서 상근한 연수가 공무원 연금 기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시민단체 상근 경력이 있는 공무원은 기관 및 부처별 호봉책정위원회에 증빙자료와 함께 호봉 인정을 직접 신청해야 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호봉책정위에서 호봉에 반영하는 게 적절한 시민단체 경력인지 등을 판단해 호봉 인정 경력을 산정한다. 시민단체 특성상 생성 및 소멸이 빈번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입증자료를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결정”

공무원 사회 안팎에서는 이전 정부와 비교해 현 정부에서 시민단체 출신이 공직에 많이 유입돼 ‘시민단체 우대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 정부 청와대와 각 부처에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일부 공무원은 “시민단체 경력이 변호사나 회계사 경력과 맞먹는 것이냐” “시민단체의 본령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일에 있는데, 이런 경력까지 호봉에 반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교하게 짜여야 할 공무원 보수규정이 공청회 같은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개정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진우 인제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개정안에서 호봉이 인정되는 경력 기준은 소속 시민단체 구성원 수와 활동 기간밖에 없어 얼마든지 기계적으로 이 기준에 맞추는 등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기준은 충분한 의견 수렴과 합의를 통해서만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공무원 보수를 전년 대비 2.6% 올리고, 사병 봉급은 87.8% 인상하는 안도 포함됐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시민단체#경력#변호사#공무원#호봉#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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