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6시 40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씨네큐브 광화문에 경찰 200여 명이 모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31년 전 과거와 마주했다. 서울대 학생 박종철 씨를 물고문 해 숨지게 한 선배 경찰의 모습이다.
이날 단체관람은 상영관 한 곳을 통째로 빌려 진행됐다. 경찰청 고위 간부부터 하위직 직원까지 두루 참석했다. 2시간 9분에 걸친 영화 상영 내내 객석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남영동’으로 상징되는 대공수사처 소속 경찰들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장면과 연세대 학생 이한열 씨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피 흘리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모두 먹먹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를 떴다. 민갑룡 경찰청 차장은 “마음을 굳게 먹고 봤는데 어쩔 수 없네…”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민 차장은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된다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마음을 모아 개혁을 잘하겠다”고 말했다.
고위 간부 중 일부는 1987년 당시 경찰대 재학 중이었다. 당시 경찰대 4학년생이었던 민 차장도 “영화를 보니 당시 대학생들에게 부채의식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대생이었던 다른 간부는 “휴가를 나와 대학가에 가면 모든 친구들이 시위 중이었고 내가 졸업하면 지휘할 전투경찰은 시위를 막고 있었다. 당시 ‘나도 원래 저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라며 착잡해했던 감정이 영화를 보고 다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영상 경찰청 수사제도개편단장(53·경무관)은 영화 관람 중 울컥하는 감정을 억눌렀다. 이한열 씨와 절친했던 친동생 영갑 씨(50)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갑 씨와 이한열 씨는 연세대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절친하게 지냈다. 이한열 씨가 쓰러진 시위 현장에도 함께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실제 이한열 씨 장례식 장면에서 상여를 든 영갑 씨가 나온다. 이 단장은 “동생이 마음의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봤기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번 단체관람은 이철성 경찰청장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청장은 지난해 12월 28일 먼저 영화를 보고 “경찰에 아픈 역사지만 인권 경찰로 나아가는 각성을 주는 영화니까 솔선수범해서 보자”고 제안했다. 이 청장은 “부끄러운 과거를 외면하려고만 하지 말자. 영화를 보고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성찰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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