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서로의 6층 상가. 건물 뒤 타워주차장 입구 근처에 ‘연결살수설비송수구’ 3개가 눈에 띄었다. 연결살수설비는 지하실 등에 불이 났을 때, 스프링클러처럼 자동으로 물을 뿌려 불을 끄는 장치다. 송수구는 건물과 소방펌프차를 잇는 연결 부위다.
마침 송수구 앞에는 차량 두 대가 서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접근할 틈도 없었다. 주차장 입구가 막다른 골목에 있어 소방차가 진입할 경우 차를 옮길 공간도 없었다. 건물 관리인 권모 씨(79)는 “주차장 승강기를 개조하느라 임시로 차량을 여기에 세웠다. 소방호스만 연결하면 되는데 좁은 게 뭐 그리 문제냐”고 반문했다.
○ 부실 관리에 사라진 소화전
도로교통법(제33조)에 따르면 소방용 기계나 소화전, 송수구 등에서 5m 이내에는 주차할 수 없다. 위반 시 과태료 4만∼5만 원이 부과된다. 방화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아 놓는 행위도 금지다. 그러나 시민들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어떤 용도인지도 잘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며 불법 주차를 서슴지 않는다.
화재 발생 초기에 소방설비 사용이 불가능하면 자칫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보통 불이 났을 때 현장에 출동한 소방펌프차에서 나오는 강한 압력의 물로 진화한다. 그러나 소방펌프차나 건물 물탱크에 물이 바닥나면 소화전과 각종 송수구를 동원해 불을 꺼야 한다. 서울 지역의 한 소방관은 “대형 화재 때는 소화전을 무조건 쓴다고 봐야 한다. 소규모 화재 때도 인근 소화전을 확보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소화전은 옥내, 옥외 소화전으로 구분된다. 옥외 소화전은 다시 지상식, 지하식으로 나뉜다. 옥내 소화전은 건물 내부의 복도나 실내 벽면에 설치돼 있다. 화재 초기 소화기로 진압이 어려울 때 강력한 수압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연면적 3000m² 이상 건물에 설치해야 한다.
옥외 소화전은 화재 현장에서 소방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용수를 공급받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빨간색 소화전이다. 주로 차도와 보도의 경계에 설치한다. 소방차가 다가가기 어려운 장소의 불을 진압할 때도 연결해서 사용한다.
통행에 불편을 주고 혹한에 얼어붙을 우려가 큰 지상식 소화전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지하식이다. 맨홀 뚜껑 아래 지하에 소화전을 매립한 방식이다. 뚜껑을 열고 막대 형태의 렌치를 꽂아 돌리면 소화전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건물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 연결 송수구도 중요하다. 하지만 송수구의 역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송수구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의 물을 실내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송수구 근처에 불법 주차를 하면 소방호스를 연결해도 호스가 꺾이기 때문에 물이 제대로 공급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내 집 앞 소화전부터 확인해야
현장에서 상하수도 등 다른 맨홀과 지하식 소화전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소방청에 따르면 옥외 소화전은 기술 기준에 맞춰 제작하고 ‘옥외 소화전’이란 표시만 하면 된다. 지하식 소화전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표시 규정이 없다. 지방자치단체나 관할 소방서가 맨홀 뚜껑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해 놓지만 이 역시 강제 조항은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송수구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장충동1가 한 건물 송수구 앞에 트럭을 세워놓은 택배기사 최모 씨(42)는 “송수구 앞 주차금지 규정을 아는 사람이 100명 중에 한 명이나 되겠느냐”며 “잘 보이는 곳에 ‘전방 5m 앞 주차금지’라는 문구라도 넣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들도 내 집과 사무실 주변에 소화전과 송수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소 자신의 집 앞 지하식 소화전 위에 승용차를 세운 최모 씨(57·여)는 “자칫하면 내가 세워놓은 차량 탓에 큰일이 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재현 목원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기본적인 안전 마인드를 갖출 수 있게 초중고교 때부터 교육을 강화해 소방설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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