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왼쪽)와 고 심치선 명예교수는 1948년부터 우정을 맺어왔다. 심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김 교수는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그를 잃은 쓸쓸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아일보
DB·이양자 교수 제공
“황혼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내 배에 돛을 달고 길 떠날 적엔/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70년간 우정을 나눈 친구의 마지막 배웅길에는 한 편의 시(詩)가 남아 있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난달 31일 별세한 심치선 연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의 추모예배에서 아흔 살의 노교수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지팡이를 짚으며 고인의 영정 앞으로 다가온 이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김 교수는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속세를 떠나(crossiong the bar)’를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읊어 내려갔다.
김 교수는 장례식 후 별도로 발표한 추모글에서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당시 이화여고 신봉조 교장선생께서 이전 해까진 우등생들을 몽땅 이화여대에 보냈는데, 남녀공학을 시작한 연세대에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치선이 연대 사학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기독학생회의 멤버가 되어 함께 활동하게 됐는데 그것이 1948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70년 전의 일이 아닙니까.”
평생 독신을 지켜 온 두 사람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게 됐다. 서울 시내의 평양 음식 전문점을 같이 찾아가며 세상살이의 기쁨과 슬픔을 위로하며 공감했다. 환송예배에서 추도사를 한 이계준 전 연세대 교목(명예교수)은 “우리가 냉면을 즐기던 우래옥이 거기 없으면 연락주세요. 하느님께 분점을 차리시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기도로 추모객들을 위로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왼쪽)와 고 심치선 명예교수는 1948년부터 우정을 맺어왔다. 심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김 교수는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그를 잃은 쓸쓸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네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아일보
DB·이양자 교수 제공 졸업 이후 김 교수는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심 교수는 이화여고에서 역사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이들이 재회한 것은 1955년 심 교수가 연대의 교수로 함께 부임하면서부터다. 심 명예교수는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와 함께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여학생처장을 맡으면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인성교육의 대모’로 불렸다. 심 교수는 재산 대부분을 이화여고와 연세대에 기부했으며, 시신은 연세대 의대에 기증했다.
심 명예교수의 제자인 이양자 연세대 명예교수는 “두 분이 연세대를 이끌면서 진정한 우정과 함께 제자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다”며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준 이들의 모습을 우리 사회 모두가 계속해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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