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하고 15년 간 숨어 지낸 40대에게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부산지법 형사합의7부(부장판사 김종수)는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모 씨(46)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이 같이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양 씨는 2002년 5월 21일 오후 10시경 부산 사상구의 다방에서 퇴근하던 A 씨(당시 21세·여)를 납치해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마대(麻袋)에 담아 강서구 앞바다에 버렸다. 그는 다음 날 은행에서 A 씨 통장에 들어 있던 296만 원을 인출하고, 살해 21일 뒤에는 이모 씨(41·여) 등을 꾀어 A 씨의 적금 500만 원을 해지해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통장, 도장 등이 든 A 씨 핸드백을 주워 비밀번호를 조합해 돈을 인출했을 뿐 살해하지 않았다는 양 씨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검찰이 제시한 여러 간접 증거로 미뤄 양 씨가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데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번 재판은 양 씨의 요청으로 8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인정 신문, 모두 진술, 쟁점 및 증거관계 정리, 증거조사·피고인 신문, 최종변론, 배심원 평의 절차, 선고로 이어진 공판 절차가 이날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목격자와 범행도구, DNA 등 살인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돈 인출 사실, 주변인 진술, 프로파일러 분석보고서 등 간접 증거로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느냐가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검찰은 마대에 넣은 시신을 함께 옮긴 양 씨 동거녀의 진술, 양 씨가 탔던 승용차 좌석에 남은 혈흔 등을 토대로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국선변호인 측은 간접 증거가 많더라도 살인을 뒷받침할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A 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양 씨는 범행을 부인하고 유족과 합의하지 않은 데다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배심원 의견을 고려해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배심원 평결은 유죄 7명, 무죄 2명으로 나뉘었다.
이 사건은 자칫 미제로 묻힐 뻔했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기존 최장 25년)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이후 경찰의 끈질긴 재수사와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져 사건 발생 15년 만에 범인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최소한의 정의를 세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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