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귀족 학교’로 불린 사립초등학교의 입학 경쟁은 치열했다. 신입생 추첨 당일이면 곳곳에서 탈락한 엄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던 사립초 열풍이 차갑게 식었다. 서울 사립초 3곳 중 1곳은 신입생 모집이 잘 안돼 위기에 놓여 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은혜초는 수년간 정원 미달이 반복되면서 서울에선 처음으로 폐교 신청을 했다. 학비가 비싸긴 해도 공립초보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립초가 직격탄을 맞은 이유는 뭘까. 》
서울지역 사립초등학교인 A학교는 최근 인구절벽 위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사상 처음으로 경쟁률이 1 대 1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4년 전만 해도 입학 경쟁률이 2 대 1이었지만 올해 0.9 대 1로 반 토막이 났다.
A학교 교감은 “학교가 설립된 1960년대만 해도 사립초에 대한 학생 수요가 워낙 많아 관내에만 사립초가 9개나 생겼을 정도”라며 “하지만 이제는 적잖은 학교가 학생 유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사립초 B학교는 3년째 입학경쟁률 1 대 1을 유지하며 간신히 정원을 채우고 있다. 지원자가 모두 등록하거나 끝까지 다니는 것은 아니다보니 결원율이 높은 것이 문제다. 약 590명 정원의 이 학교는 지난해 170여 명이 빠져 결원율이 28%에 달했다.
○ ‘저출산 직격탄’에 “학생이 모자라”
최근 서울 은평구의 사립초인 은혜초가 학생수 감소를 이유로 사상 첫 폐교를 신청했다. 동아일보 취재결과 은혜초뿐 아니라 서울 사립초 3곳 중 1곳이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9일 서울시교육청의 ‘사립초 경쟁률 및 결원율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번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서울지역 사립초 39곳 중 4곳이 정원보다 적은 지원자가 몰리는 미달 사태를 겪었다. 딱 정원 수준 지원자만 몰려 정확히 1 대 1 경쟁률을 보인 사립초도 3곳이었다. 올해는 미달을 겪지 않았지만 지난 5년간 한번이라도 신입생 미달을 경험해 본 사립초는 6곳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 39개 사립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3곳이 최근 5년간 정원 미달을 겪거나 간신히 정원을 맞춘 셈이다.
사립초 지원 경쟁률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로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이 꼽힌다. 서울지역 초등학생 수는 2011년 53만5948명에서 지난해 42만8333명으로 줄었다. 6년 새 10만 명이 감소한 것이다.
국가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사립초는 학생 수 감소가 곧 학교의 재정과 직결된다.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학교 운영비와 교사 임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학생 수에 학교 생존 문제가 걸려 있다. 서울의 한 사립초 관계자는 “공립초는 학생 수가 줄어도 학급당 학생 수나 학급 수 자체를 줄여 운영을 계속할 수 있지만 사립초는 그렇지 않다”며 “사립초는 정부 지원이 없다 보니 학생이 없으면 결국 폐교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 영어교육 막히고 특기교육 경쟁력도 추락
올해는 교육부의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정책으로 사립초들이 설 곳이 더욱 좁아졌다. 저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질 높은 영어교육이 사립초의 강점 중 하나인데, 이와 관련한 교육이 원천 차단되면서 지원자가 더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북부 지역 사립초에 지원한 학부모 최모 씨는 “매달 100만 원 상당의 비용을 들여 사립초에 보내는데 영어마저 따로 또 돈과 시간을 들여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립초 지원이 망설여졌던 게 사실”이라며 “주변 엄마들 중에서도 실제 이런 이유로 지원을 포기하거나 당첨되고도 최종 등록을 안 한 가정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사립초 C학교 관계자는 “실제 올해 지원율 하락에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여파가 가장 컸다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립초가 중국어 교육 등 차별화되는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립초가 위기를 겪는 동안 공립초의 특기교육이 다양화된 것도 사립초 지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에는 수영, 승마, 악기교육 등을 사립초에 가야만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공립초에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요즘 공립초에도 다양한 분야의 방과후 수업이 개설돼 ‘1인 1악기 프로그램’이나 각종 체육특기활동을 할 수 있다”며 “돌봄교실 같은 경우에는 재정이 빠듯한 사립보다 정부 지원이 많은 공립이 더 잘 돼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공립초에서도 지난해부터 3, 4학년 필수과목으로 생존 수영 수업이 시작됐다.
사립초만의 장점과 특징이 줄어든 반면 비용 부담(연간 1000만 원 내외)은 커지다보니 지역의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부터 사립초 인기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서부지역의 한 사립초 관계자는 “지역 내에서 서울 강남 같은 곳에 비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학부모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재단재정이 탄탄한 대학부설 사립초나 입지가 좋은 대로변 학교의 경우 타격이 덜하지만 규모가 작거나 입지조건이 열악한 학교들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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