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4년 차 직장인 김모 씨(31)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11일 법무부가 가상통화를 도박과 투기로 규정짓고 거래소 폐쇄 방침까지 발표하자 6월 지방선거 때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지난해 2월부터 5000만 원가량을 투자했다. 그는 “법무부가 추진하는 법안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투자와 투기의 기준이 모호한데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가상통화를 투기로 몰아붙인다는 것이다. 김 씨는 “하루 새 강남 집값이 1억 원 올라가도 손도 못 쓰면서 서민들 희망인 가상통화는 금지시키려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온·오프라인에선 김 씨와 같은 격앙된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투자자 사이에선 법무부의 방침이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지적 역시 많았다. 미국의 경우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가상통화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선물로 상장하는 등 제도권으로 들였다는 것이다.
○ 오락가락 정부 발표에 시장 출렁
법무부 방침이 발표된 이날 가상통화 가치는 하루 종일 출렁였다. 발표 전인 오전 11시 2100만 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발표 후 하락세를 보이며 오후 3시에는 1751만 원까지 떨어졌다. 16.6%가 빠졌다.
가상통화의 가치는 오후 들어 청와대에서 “부처 간 협의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발언이 나오자 반등했다. 가상통화 투자자들 사이에선 “법무부 방침은 말이 안 된다. 청와대 입장은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라는 분노 섞인 냉소가 터져 나왔다. 가상통화 투자자인 석모 씨(31·회계사)는 “며칠 전부터 오늘 같은 시나리오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을 정도”라고 성토했다.
법무부 발표 직후 오히려 가상통화를 사는 사람이 많았다. 가상통화를 싸게 사들일 수 있는 호재라는 것이었다. 서울 마포구 자영업자 김모 씨(30)는 “정부가 세금 부과를 위해 시장에 충격을 준 듯하다. 실제로 폐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오히려 낮 12시 무렵 1000만 원가량 더 투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투자로 300만 원가량 수익을 거뒀다.
해외 거래소로 가상통화를 옮겨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대기업 8년 차 대리 강모 씨(32)는 가상통화 일종인 ‘이더리움’ 보유분을 미국과 홍콩의 거래소로 옮겼다. 가상통화는 별다른 장벽 없이 다른 국가의 거래소로 옮길 수 있다. 강 씨는 “법무부 발표가 있기 전 7000만 원어치를 샀는데, 발표 직후 15% 급락했다. 해외 거래소는 하락 폭이 국내보다 작아 일단 거래소를 옮겨 버텨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사이에서도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방침처럼 결론이 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관계자는 “오늘 일시적으로 투자자들이 몰려 투자금이 많이 빠지기는 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정부의 최종 방침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법무부엔 빗발치는 항의
시장에 준 충격은 오후 들어 회복되는 모양새였지만 항의는 계속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정부 방침을 반대하는 글들로 넘쳐났다. 게시판에는 가상통화 규제를 반대하는 취지의 글이 이날 하루 올라온 것만 오후 7시 기준으로 3200건을 웃돌았다. 지난해 12월 말 가상통화 규제를 반대한다는 취지로 올라온 청원은 찬성 수가 6만 명을 돌파했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말 “가상통화는 떨어진다. 내기를 해도 좋다”고 한 발언을 두고 “최 원장을 해임해 달라”는 취지의 청원도 2만 명을 넘어섰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대거 몰리자 청와대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금지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법무부엔 당장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날 가상통화 폐지를 언급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 사무실은 “손해를 책임질 것이냐”며 반발하는 투자자들의 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한편 주로 가상통화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법무부 대책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충격에 휩싸인 가상통화 투자자들을 풍자하거나 조롱하는 반응 역시 등장하고 있다. 회사원 조모 씨(30)는 “온라인에선 이미 가상통화 투자자들을 ‘코인충’으로 부를 정도로 투기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도박과 다르지 않은 가상통화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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