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13년 치매 아내 홀로 두고 가슴 졸이며 일나간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6일 03시 00분


화마로 떠나보낸 미화원의 눈물

10일 오전 5시 잠에서 깬 환경미화원 최영우(가명·61) 씨가 옷을 갈아입으며 곤히 잠든 아내(62)를 내려다봤다. ‘오늘도 별 탈 없이 지나야 할 텐데….’

13년 전 아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일곱 살’이 됐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7세 수준의 지능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에는 치매 판정까지 받았다. 최 씨 아내는 아프기 전 솜씨 좋은 미싱사였다. 바느질로 동생들 학비를 해결할 정도였다. 결혼 후에는 남매를 키우느라 자기 몸 돌볼 겨를이 없었다.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있는데도 “약을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한다”며 치료를 미뤘다.

처음 1년간 최 씨는 아내 간호에 매달렸다. 하지만 식비와 병원비, 아내 기저귀 비용까지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환경미화원을 시작했다. 이날도 최 씨는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는 가스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잔뜩 둘렀다. 뇌병변 판정 후 아내는 직접 요리한 적이 없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냉동식품을 꺼내더니 프라이팬에 올렸다.

이날 오후 1시경 오전 일을 마치고 쉬던 최 씨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큰일 났어요. 아내분이… 당장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최 씨가 갔을 때 집 안팎은 곳곳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소방관은 “부엌에 있던 정수기의 호스가 녹아내리면서 물이 쏟아져 다행히 불은 빨리 꺼졌다”고 했다. 하지만 119 신고도, 대피요령도 모르는 최 씨 아내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최 씨는 “요양보호사를 더 일찍 오게 했어야 하는데…”라며 자책했다. 아내는 장기요양보험 3등급 판정을 받아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의 돌봄서비스를 받는다. 더 오랜 시간 서비스를 받으려면 매달 수십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최 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이 허무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송영찬 chanson@donga.com·최지선 기자
#치매#화재#환경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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