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은평구의 공사현장에서 벌어진 ‘외국인 불법 고용 반대’ 시위에 참가한 일용직 근로자 박모 씨(57)는 반대쪽 외국인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열흘째 일을 얻지 못했다는 박 씨는 “저 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싼 값에 시키는 대로 다 한다”고 하소연했다. 시위현장뿐 아니라 경기 성남과 안산, 서울 구로의 새벽 인력시장에서 만난 한국인 근로자들의 분노는 외국인을 향했다.
외국인끼리도 갈등한다. 8년 전 합법체류 자격을 얻어 한국에 왔다는 중국동포 박모 씨(33)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일당 5만 원에도 일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고 말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불법 감추기도 판을 친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합법 동료 근로자 이름을 ‘데스라’(출근기록부를 가리키는 말)에 적고 지장을 찍는 방식이 횡행한다. ‘오야지’(일본어로 책임자)라 불리는 불법 재하청 인력업자까지 끼어들어 더욱 혼탁해졌다.
하지만 일자리를 뺏고 뺏기는 이들의 처지는 비슷했다.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산다. 불법체류 외국인은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다. 일당을 떼이고 산재를 당하고 휴식을 못해도 살아남기 위해 참아야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 L씨(46)는 “같은 처지의 동료 10여 명이 두 달간 수수료 1200만 원을 뜯기고 임금도 4400만 원이나 밀렸지만 아무 말 못하고 있다”면서도 “잘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2016년 말 현재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외국인 건설 근로자 약 27만5000명의 81.4%인 22만4000명이 불법 고용 근로자다. 16~18일 본보 취재진이 찾은 건설현장과 새벽 인력시장에서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건설사와 하청업체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해 인건비를 줄이고 국토교통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는 이를 알면서도 외면한 셈이다. 그 결과 노동시장의 가장 하층으로 밀려난 약자(弱者) 사이에 ‘밥그릇 전쟁’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최근에야 국토부는 건설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불법 고용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는 아니다. 불법체류 외국인을 모두 받아주기는 어렵지만 상생(相生)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세계화와 힘든 노동을 기피해 생기는 ‘일자리 밀어내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다툼도 대도시에서만 발생한다. 도서나 산간지역에서는 불법 체류 외국인마저 고용하기 힘들다.
나경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피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일하면 체류 자격을 부여하거나 얼마간 체류 기간을 늘려주는 방법과 근로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막기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을 무조건 지급하게 하는 적정임금제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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