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성동구 치매지원센터 ‘기억키움학교’에서는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동그랗게 모여 앉은 노인 10명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노랫말을 떠올리며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강사는 스케치북을 나눠줬다. “따라 부른 노래 가사를 이번에는 직접 적어보세요.” 검은색 펜을 든 노인의 손은 써내려가다가 헷갈리는 글자 앞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단순히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알아맞히는 게임이 아니다. 치매 노인의 인지(認知)기능 회복을 돕는 치료법이다. 박성현 작업치료사는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유지되도록 놀이 위주로 치료하고 있다. 치매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홀로 오갈 수 있는 노인들 위한 공간
서울시 25개 자치구에는 치매지원센터가 있다. 이 가운데 성동구를 비롯한 13개 센터에 기억키움학교가 있다. 기억키움학교는 치매 5등급(치매 등급 1∼5등급 가운데 가장 가벼운 증상)이나 ‘등급 외’ 판정(홀로 일상생활은 가능하나 판단력과 인지능력이 약간 떨어져 예방서비스가 필요한 단계)을 받은 경증(輕症) 치매노인을 위한 공간이다. 집과 이곳을 혼자서 오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13년 10월 서울시가 ‘경증 치매노인을 위한 공공시설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 성동구와 서대문구에 만든 게 시작이다.
이날 기억키움학교에서 만난 권여옥(가명·72) 씨는 편지쓰기 수업을 받았다. 권 씨는 “내가 왜 주방에 왔는지, 왜 가위를 들고 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상해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치매라고 하더라. 심하지는 않다는 말에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닌다”고 말했다.
기억키움학교 정원은 오전반(오전 9시∼낮 12시), 오후반(오후 1시 반∼4시 반) 10명씩이다. 월∼금요일 수업을 듣는다. 한 번 등록하면 1학기(6개월)를 다닐 수 있다. 3회까지 연장 가능하다. 최장 2년을 다닐 수 있다. 옛날 영화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회상훈련을 한다. 일기나 편지쓰기를 하며 인지기능 자극 훈련을 한다. 만족도는 높다.
경증 치매노인 가운데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지기능을 자극하는 훈련의 중요성이나 이런 훈련 프로그램이 있는 기억키움학교의 존재를 몰라서다. 권 씨도 보건소 직원이 권유하지 않았다면 기억키움학교를 영영 모를 뻔했다.
박 치료사는 “날이 따뜻해지는 3, 4월이면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어르신이 많이 찾는다. 장기요양 시설은 주로 중증 치매환자 위주로 프로그램이 운영돼서 경증 노인들은 갈 곳이 별로 없다. 이곳에서 상태가 좋아진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 경증 단계부터 적극 관리해야
서울시에 따르면 전국 치매 노인은 68만 명이며 서울에 약 10만 명이 있다. 시 관계자는 “경증 치매노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기억키움학교를 올해 안에 나머지 12개 자치구에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치매노인뿐 아니라 경증 치매노인을 위한 시설을 늘리고, 정책 부서는 초기 단계에서 인지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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