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취업자, 청년 처음 앞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3시 00분


60세이상 413만 vs 15~29세 397만… 노후막막 고령층, 비정규직 내몰려
청년실업 해소 정부 대책 약효없어

지난해 만 60세 이상 고령층 취업자 수가 15∼29세 청년 취업자 수를 사상 처음 앞질렀다. 한국 사회가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백수 청년’이 늘어나고 저소득층 노인들이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된 결과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전체 취업자 가운데 고령층 취업자는 413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5.6%에 이른 반면 청년 취업자는 397만3000명으로 전체의 15.0%에 그쳤다. 196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고령층의 취업자 수와 취업비율이 청년층을 앞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고령층 청년층 모두 괴로운 고용 현실

노인 빈곤이 심해지면서 고령층은 일자리의 질을 가리지 않고 취업하는 추세다. 2016년 국내 고령층의 절반에 가까운 46.5%가 같은 연령대 소득의 절반도 못 버는 빈곤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2012년부터 최근 통계가 나온 2015년까지 매년 OECD 1위였다. 특히 OECD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76세 이상 한국 노인의 빈곤율이 OECD 평균의 4배에 달했다.

고령층이 퇴직 후 간신히 구한 일자리는 대체로 임금과 복지 수준이 낮다. 일례로 경기 시흥시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정만수(가명·71) 씨는 14년째 경비원 생활을 하고 있다. 정 씨는 “50대 중반까지 직장생활을 했지만 노후 대비를 하지 못했다”며 “3년 전 아들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빚을 많이 져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른 살 넘은 딸의 용돈까지 챙겨주고 있다.

반면 청년층은 도전할 만한 일자리 자체가 적다. 2000년 이후 8%대를 오가던 국내 청년실업률은 2014년 9.0%로 뛰었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악인 9.9%에 이르렀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최근 정규직에 도전하기 시작한 이모 씨(31)는 ‘취업의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만 30여 개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이 씨는 “정부가 정규직 채용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기업들은 (고정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정규직 채용에 더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령층 취업자 수가 청년층 취업자 수를 넘어선 현상의 이면에 일하기 싫어도 일할 수밖에 없는 고령층과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청년층의 고민이 동시에 반영된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청년보다 노인이 더 일하는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워도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늙어가는 고용’ 경제 활력 저하 우려

고령층 취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경제 활동에 나서야 할 청년들이 일자리 시장에서 배제되면서 결혼과 출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1차 대책을 청년실업 해결에서 찾아야 한다”며 청년실업 해소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10년 동안 21개 청년실업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공개 질책하자 기재부는 28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1급 이상 간부 전원이 참석하는 ‘청년 일자리 대책본부’를 부처 내에 설치했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고령층 취업자가 청년층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은 점점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2008년 청년인턴제 도입, 2010년 청년 해외취업 활성화, 2013년 고졸취업 강화 등 굵직한 청년실업 대책을 내놨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노인 빈곤 문제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젊은이가 장기간 일해야 할 좋은 일자리가 없어지고 고령층이 종사하는 질 나쁜 일자리만 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며 “차라리 단기 대책을 버리고 일자리 구조 자체에 대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최혜령 기자
#노인#취업자#청년#고령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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