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추가조사결과 발표前 대법관들에 아무 설명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03시 00분


사법부 수뇌부 갈등 표면화 조짐

김명수 대법원장(59·사진)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 전 대법관 13명에게 그 내용에 대해 아무 설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조사 결과엔 2015년 당시 지금의 대법관 7명이 참여했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 재판과 연계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에게 사전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 안팎에선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앞으로 ‘사법부 블랙리스트’ 3차 조사의 절차와 방향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원세훈 선고’ 관련 문건이 발단

추가조사위가 22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0) 재임 중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원 전 원장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청와대와 주고받은 의견 등을 정리한 문건이 포함돼 있다. 제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다.

여기엔 원 전 원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데 대해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구속)이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법원행정처가 대통령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실제 우 전 수석의 희망처럼 원 전 원장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당시 대법원은 사건을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에 배당했다가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사안이 중대하다는 이유였다.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판결을 전원 일치로 파기하고 핵심 증거를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3개월 뒤 원 전 원장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원 전 원장은 2017년 8월 파기 환송심에서 다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 ‘대법관들까지 조사 대상’ 논란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간에 갈등 기류가 형성된 주요 배경은 ‘원 전 원장 사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경위’가 3차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법원행정처의 원 전 원장 사건 문건엔 ‘상고심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기간 동안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이란 대목이 있다. 이에 일부 판사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원 전 원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에 참여했던 대법관들은 황당해하는 분위기다. 당시 이상훈(62·퇴임), 이인복 대법관(62·퇴임) 등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했다. 청와대와 상고법원을 놓고 거래를 했다면 대법관 전원일치로 원 전 원장 사건을 파기하는 판결이 나올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 ‘대법원장 vs 대법관들’ 편 나뉘나

김 대법원장은 25일 취재진에게 추가조사위 조사 결과에 대해 “대법관들도 이번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고뇌와 노력을 충분히 이해했고 빠른 시간 내에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대법관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에게 수차례 사법부가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PC 파일 개봉을 당사자 동의 없이 하는 데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다.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23일 김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공동으로 “(원 전 원장 전원합의체)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하여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힌 데도 대법관들의 불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3차 조사 대상에) 대법관들까지 들어간다면 결국 대법원장 대 대법관들로 편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대법원장#김명수#추가조사#대법관#사법부#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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