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선물한 가방 손에 꼭 쥐고…눈물과 흐느낌으로 얼룩진 장례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9일 2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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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9시 20분경 경남 밀양시의 한 장례식장. 정모 씨(95·여)의 영정 사진을 든 손녀 강모 씨(45)가 2층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울음을 참는 듯 입술을 꾹 다문 모습이었다. 안경 너머 눈빛은 초점을 잃은 듯했다. 혼자 걷기가 힘든 듯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할머니 정 씨를 누구보다 잘 따른 손녀딸이었다. 사람들은 발인 내내 강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정 씨는 생전 세종병원 2층에 입원 중이었다. 고령이었지만 얼굴이 맑고 정신도 또렷했다. 원래 병원 5층에서 요양 중이었지만 감기가 걸려 2층으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고 3일 전에는 입맛이 없다고 해 며느리가 흰 죽과 동치미를 싸서 갔다. 정 씨는 “목넘김이 너무 좋다. 금방 감기가 나을 것 같다”고 했다. 25일 가족들이 두유를 사서 갔더니 아이처럼 좋아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세종병원에 화재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사고가 난 뒤 20분 정도가 지나 교회에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가족들은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고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현장은 이미 통제 중이었다. 발만 동동 굴렀다. 강 씨는 어머니 김 씨를 붙들고 “우리 할머니 어떻게 하냐”며 울기만 했다.

가족들이 정 씨의 시신을 찾은 건 그로부터 7시간이나 지난 오후 3시경. 가족들은 할머니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 밀양 시내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종병원 인근 자활센터 사무실에 임시로 안치된 정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담요를 덮고 있는 정 씨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정 씨가 쥐고 있던 가방 때문이다. 가방은 손녀 강 씨가 사준 것이었다. 한 가족은 “할머니가 가방을 들고 대피하려다 쓰러지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의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 인근 화장장으로 향했다. 가족들은 기도 후 할머니를 보냈다. 정 씨가 다니던 교회 관계자는 “손녀 강 씨가 ‘할머니가 대피하는 와중에도 가방을 챙기려 한 것 같다’며 힘들어한다고 들었다”며 “가족들이 슬픔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종병원 화재 참사 4일째인 이날 시내 곳곳은 오전부터 눈물과 흐느낌으로 얼룩졌다. 정 씨를 비롯해 사고로 숨진 39명 중 15명의 발인이 이날 시내 주요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빈소 4곳이 추가로 설치돼 화장한 1명을 포함해 39명 모두 장례 절차를 밟았다. 30일 13명, 31일 2명이 발인한다.

밀양=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밀양=안보겸 기자 ab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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