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여중고 만학도 高3 18명, ‘내 생각 말하기 대회’ 함께 눈물
원주서 6시간 왕복 박효신 할머니 “이젠 박사까지 따는게 꿈”
29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중고교 지하강당에서 열린 ‘내 생각 말하기 대회’에서 최고령 참가 학생인 장일성 할머니(82)가 만학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전쟁과 가난은 유독 여자에게 가혹했다. 딸, 누나, 여동생이어서 배움을 포기해야 했다. 그게 ‘한’이었고 배우는 게 ‘꿈’이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들 늦깎이 여고생 18명의 사연에 사람들은 함께 웃고 울었다.
29일 서울 마포구의 2년제 평생교육 인정학교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지하강당. 졸업을 앞둔 50대부터 80대까지 고3 학생들 18명의 ‘내 생각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이들을 위해 동기 선후배 15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일성여·중고는 만학도를 위한 학교다. 이곳에서는 총 6년이 걸리는 중·고교 과정을 각각 2년씩 총 4년에 마칠 수 있다.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인 장일성 할머니(82)에게 배움은 설렘이었다. 장 할머니는 11남매 중 넷째였다. 6·25전쟁 이후 돈을 벌러 나간 부모와 생이별했다. 외지에 공부하러 간 오빠와 언니를 대신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셨다. 동생까지 돌보느라 초등학교도 못 마쳤다. 7년 전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올해 3월에는 서정대 식품영양학과 신입생이 된다. 기쁨을 함께 나눌 남편은 지난해 세상을 먼저 떠났다. “남편이 정말 큰 힘이었는데…. 그래도 제가 대학에 가도 하늘에서 계속 응원해주시리라 믿어요.”
늦은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다. 강원 원주시에 사는 박효신 씨(67·여)는 지난 4년간 휴일과 방학을 빼면 매일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6시간 거리를 통학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이다. “평생 초등학교 졸업이 될 뻔했는데 이제 조리과에 가서 박사까지 따는 게 꿈이에요. 공부가 이렇게 힘든지 미처 몰랐어요. 하하.”
고교 졸업의 꿈을 이뤄서인지 다들 행복해했다. 이석례 씨(62·여)는 갑상샘암 진단을 계기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마음속에 묻어둔 꿈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늦었다고 핑계를 대거나 아프다고 움츠러들지 않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어요.”
김기숙 씨(59·여)는 졸업을 앞둔 자신을 가리켜 ‘늦게 피는 꽃’이라고 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오래 피는 법이잖아요.”
다들 울다가 웃었던 이날 아코디언 축하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전주가 흐르자 약속이라도 한 듯 참가자들이 하나둘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이크는 장 할머니가 잡았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맞다. 배움에 나이가 어떻단 말이냐. 참 적절한 선곡이다.
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2018-01-30 15:19:15
늦었지민 좋은 세상을 만나신것을 축하합니다.배우는 즐가움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졸업을 축하합랍니다...
2018-01-30 13:07:19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늦게핀 꽃이 더오래 피리라는 글귀가 아름답고 마음에 와 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