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른 살 동갑내기 이모 씨(37)와 김모 씨(37)는 부부가 됐다. 부족한 준비에 남편 이 씨는 미안했다.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출산 계획까지 미뤄가며 일했다.
아이가 지낼 방을 따로 마련해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집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래도 마흔 살을 넘기지는 말자고 했다. 이 씨는 식품업체에서, 김 씨는 세종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2년 전부터 생활이 나아졌다. 일하기 바빠 여행도 가지 못하다 1년에 한 번 씩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마흔 살 전 아이를 갖자는 약속도 했다. 한 지인은 “두 사람은 사이가 너무 좋아 부부라기보다 연인처럼 보였다. 아내 김 씨는 아기를 가지려 이름도 바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6일 오전 세종병원에서 일어난 불이 아내 김 씨의 목숨을 앗아갔다.
30일 오전 8시경 김 씨의 발인이 열렸다. 남편 이 씨의 얼굴에는 수염이 거뭇하게 올라와 있었다. 이 씨는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아내의 흔적을 보니 견디기가 어렵더라.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아내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경 화장장에 도착하자 울음바다가 됐다. 이 씨는 자신의 얼굴을 닦던 휴지로 영정 속 아내의 얼굴을 닦았다.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 내 울었다. 김 씨의 가족들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한 유가족은 “누구보다 착했던 김 씨가 꼭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닦았다.
세종병원 화재로 숨진 희생자 39명 중 이날까지 35명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날 간호조무사 김 씨와 동료였던 간호사 김모 씨(49·여) 등 의료진 2명의 발인이 나란히 치러졌다. 이들은 당시 병원에서 환자들을 구하려 애쓰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사 김 씨를 떠나보내던 어머니(72)는 마지막 술 한 잔을 건네다 다시 오열했다. 발인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계속됐다. 맏딸이었던 김 씨는 평소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김 씨는 “엄마랑 평생 같이 살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다 못한 효도를 병원 어르신들에게 대신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병원에서 약 2㎞ 떨어진 삼문동 밀양문화체육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두 사람을 추모하는 간호조무사 준비생들의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밀성제일고 3학년 박모 양(18)은 두 사람의 영정을 차례로 살피며 한참을 서서 흐느꼈다. 간호조무사를 꿈꾸는 박 양은 지난해 여름 세종병원에서 한 달간 현장실습을 하며 이들과 함께 일했다. 박 양은 “(숨진 두 사람이) 실습 온 학생들을 잘 챙겨주면서 많은 걸 가르쳤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 중인 이모(46·여) 신모(41·여) 조모 씨(39·여)도 이날 간호사 김 씨의 영정 앞에 섰다. 김 씨가 밀양 시내의 다른 병원 소아과에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냈던 인연이다. 이 씨는 “우리 아이들이 나고 자랄 때 병원에 오가며 항상 김 선생님을 만났다. 옛날 생각이 너무 많이 난다”며 가슴 아파했다. 나흘간 약 8000명의 시민이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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