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라 안심했는데…” 교실-체육관 미세먼지 농도 ‘빨간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03시 00분


실내 초미세먼지 기준 논란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운동회를 맞아 달리기 경기를 하고 있다. 실외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실내 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높아진다. 환기시설을 잘 갖추지 않으면 학생들의 활동으로 실내 체육관의 미세먼지 농도가 실외보다 더 나쁠 수 있다. 동아일보DB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운동회를 맞아 달리기 경기를 하고 있다. 실외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실내 미세먼지 농도도 함께 높아진다. 환기시설을 잘 갖추지 않으면 학생들의 활동으로 실내 체육관의 미세먼지 농도가 실외보다 더 나쁠 수 있다. 동아일보DB
‘미세먼지 피하려고 체육관에 들어갔는데 체육관 내부의 미세먼지가 더 나쁘다면?’

지난해 정부는 어린이·청소년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실내 체육시설이 없는 979개 학교에 2019년까지 체육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언뜻 들으면 학생들을 고농도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는 훌륭한 대안처럼 들린다. 하지만 과연 체육관 내부의 공기는 깨끗할까?

교육부가 올 3월부터 적용하기로 한 교사(校舍·체육관 포함) 초미세먼지(PM2.5) 신설 유지 기준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m³당 7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이하로 입법예고했지만 실외 미세먼지 기준 ‘나쁨’ 수준(m³당 50μg 초과)보다 못하다는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같은 달 26일 수치를 지운 채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른 (실외 미세먼지) 일평균 기준을 적용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재입법예고를 한 뒤 전문가 협의에 들어갔다. 현재 실외 미세먼지 일평균 기준은 50μg 이하이고 올 상반기 중 35μg 이하로 강화될 예정이다.
 

 
○ 실내 기준 설정, 왜 어렵나


교육부의 당초 기준인 70μg 이하는 사실 환경부의 민감계층시설 관리 기준을 따른 것이다. 민감계층이란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 노약자를 뜻한다. 환경부는 이들이 이용하는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산후조리원 등에 대해 실내 초미세먼지 권고 기준(유지 기준보다 한 단계 낮은 관리 기준)을 6시간 평균 m³당 70μg 이하로 정했다.

미세먼지 영향에 취약한 민감계층의 이용 시설 관리 기준이 실외 환경 기준(일평균 50μg 이하)보다 더 높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밀폐된 공간의 미세먼지 농도가 개방된 공간보다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환경청(EPA) 사이트에선 실내 미세먼지와 관련해 ‘외부 미세먼지와 공기질보다 나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실내로 피신한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실내 공기질 관리가 잘 안 되는 곳이라면 기존 먼지에 실외 먼지가 더해져 오히려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을 수 있다. 환경부 실시간 자동측정소 자료에 따르면 황사가 온 2015년 2월 23일 인천지하철 1호선 작전역 안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m³당 498.8μg으로 황사주의보 수치(400μg)보다 높았다.

따라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했을 때 실내체육관을 대안으로 삼으려면 기본적으로 내부 공기질 관리가 잘 이뤄져야 한다. 방법은 환기시설이나 공기정화기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공기질을 개선하는 것뿐이다. 만약 실내 공기질 기준 수치를 실외처럼 대폭 낮춘다면 그만큼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난감한 교육부

학부모 단체들은 현 기준이 너무 높다며 ‘최소 m³당 35μg 이하’로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회원이 7만 명에 이르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는 지난해 12월 ‘세계보건기구(WHO) 초미세먼지 권고 기준인 25μg 이하로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 미대촉은 국내 여건상 25μg 이하가 어렵다면 최소한 올해 상반기 새롭게 적용할 대기환경 기준에 따라 35μg 이하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환경부는 조만간 실외 미세먼지 ‘나쁨’ 기준을 50μg 초과에서 35μg 초과로 강화할 예정이다. 이미옥 미대촉 대표는 “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은 실내든 실외든 다르지 않다”며 “실내 기준이 최소 실외 기준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기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다소 높은 것은 사실이다. 초미세먼지의 실내 기준을 정한 나라가 많지 않지만 대만(일평균 35μg 이하)이나 독일(일평균 25μg 이하)의 기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하다. 다만 이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실외 공기질이 좋다.

교육부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현실을 반영해 미세먼지 기준을 세우자니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기준을 강화하자니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체육관 한 곳을 짓는 데만 18억∼20억 원이 들고 여기에 초미세먼지를 정화할 수 있는 수준의 설비를 갖추려면 추가적으로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주 체육관 등 실내 미세먼지 기준을 명확히 정하기 위해 1차 전문가 회의를 열었으나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해 조만간 2차 회의를 열기로 했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체육관을 짓기로 했다면 실제 고농도 미세먼지가 체육관 내 공기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정도 환기 시설을 갖춰야 좋은 공기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봤어야 한다”며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다시 과학적인 조사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김하경 기자
#실내 초미세먼지 기준#미세먼지#실내 운동#미세먼지 대책#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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