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와 미니 탁구를 치던 박모 군(11)이 탁구채를 들고 수줍게 웃었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방학 동안 돌봐줄 사람이 없는 박 군은 종일 이곳에서 지내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간다. 만약 지역아동센터가 없었다면 박 군은 집에 혼자 남아 게임만 하거나, 매번 패스트푸드로 식사를 했을지 모른다.
방과 후나 방학 동안 ‘돌봄 공백’을 메워주는 도담청솔지역아동센터는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박 군 같은 초등학교 1∼6학년 학생 17명의 보금자리다. 성남시가 경기도교육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학교 급식실(교실 3개 규모)을 무상 임차해 지역아동센터로 리모델링했다. 이현숙 도담청솔지역아동센터장은 “학교와 같이 있으니 접근성이 뛰어나고, 임차료가 없어 운영비가 저렴하다”고 말했다.
학교 안 어린이집이 11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부산에선 다음 달 북구 금창초교 어린이집이 새로 문을 연다. 부산 북구 남포동·금포동 등 구도심이 쇠락하면서 금창초는 26개 학급(1995년)에서 현재 13개 학급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빈 교실을 활용해 2020년에는 국공립유치원도 들어설 예정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교 안에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들어서면 앞으로 인근 ‘젊은 부모’가 유입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학교 교문을 열어 학교와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학교 빈 교실을 활용해 국공립어린이집을 짓는 방안을 확정함에 따라 도담청솔지역아동센터나 금창초 어린이집처럼 학교 빈 교실을 활용한 돌봄시설과 어린이집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3월까지 학교 안 어린이집 설치와 관련한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로 했다. 그동안 학교와 어린이집은 ‘불편한 동거’를 해 왔다. 교육(교육부)과 보육(보건복지부) 담당 부처 간 칸막이가 높고, 법적 근거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어 학교장이 재량껏 운영해왔다. 도담청솔지역아동센터나 금창초 어린이집 역시 각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의 협업이 없었다면 개원이 불가능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돌봄시설·어린이집 출입문 별도 설치 등 세부적인 시설 기준을 마련하고 △학교 안 시설 이용에 따른 책임을 시설장이 부담하도록 하고 △수도세·전기료 등 공과금도 따로 부과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빈 교실의 개념을 ‘활용 가능한 교실’로 확대해 교육부가 시도교육청, 학교와 협의해 객관적인 산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빈 교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조사 때마다 결과가 달랐다. 실제 교육부는 빈 교실 개념을 ‘월 1회 또는 연간 9회 미만으로 사용하는 교실’로 정의해 왔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현재 활용 중이더라도 발전적으로 전환 가능한 교실’을 빈 교실로 봤다.
교육부는 앞으로 빈 교실 사용의 우선순위도 정할 방침이다. 수업을 위한 필수학급 등 교육과정 본연 기능에 우선적으로 활용하되, 육아부담 완화를 위해 돌봄서비스, 국공립어린이집 등 지역사회 수요에도 적극 부응할 계획이다. 교사 휴게실이나 자료실로 쓰면서 ‘빈 교실이 없다’고 하는 건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학교 시설을 적극 개방하는 내용을 담아 상반기에 ‘학교시설 활용법’의 입법을 추진한다. 법안 입법이 완료되기 전까지 기존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학교 안 어린이집의 법적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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