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안전] ‘소화기 문맹’ 기자의 좌충우돌 실습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6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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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핀이 안 뽑혀요. 이거 불량 소화기죠?”

6일 오전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소화기를 붙잡고 30초가량 씨름하던 기자는 결국 ‘SOS(구조신호)’를 보냈다. 바로 옆에서 신호를 접수한 전민호 소방관(37·용산소방서 교육팀장)이 혀를 찼다. “왼손으로 손잡이를 누르고 있으니까 안전핀이 안 빠지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자의 손은 소화기 검은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손을 떼니 안전핀이 쑥 빠졌다.

안전핀이 빠지는 순간 불쑥 걱정이 밀어닥쳤다. 안전핀이 뽑히면 소화액이 바로 분사되는 것은 아닐까. 전 소방관은 이제 미소까지 지었다. “손잡이를 쥐기 전까지는 안 나가요. 소화기 압력계 바늘이 초록색(정상)에 와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세요.” 바늘은 다행히 초록색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늘이 노란색(비정상)에 있으면 압력이 과하거나 부족해 분사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기자가 ‘소화기 문맹’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자와 씨름한 소화기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용이다. 소화액 용량은 3.3㎏. 소화기 전체는 5.5㎏이다. 성인 남성은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처음 소화기를 들면 기자처럼 허둥댈 가능성이 높다. 대신 3가지만 잘 기억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왼손으로 소화기 몸체를 잡아 고정시킨 뒤 안전핀 고리에 오른손 검지를 넣어 움켜쥔다. 팔꿈치에 힘을 줘 수평으로 잡아당기면 안전핀이 빠진다.
왼손으로 소화기 몸체를 잡아 고정시킨 뒤 안전핀 고리에 오른손 검지를 넣어 움켜쥔다. 팔꿈치에 힘을 줘 수평으로 잡아당기면 안전핀이 빠진다.

①사용 전 안전핀을 뽑아야 한다. 이때 검은색 손잡이를 누르면 안 된다. 안전핀 고리에 손가락을 넣고 살짝만 힘을 가하면 ‘툭’하고 빠진다.

바람을 등지거나(실외) 탈출구를 확보한 뒤(실내) 발화지점을 향해 손잡이를 누른다. 분사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25도 각도를 유지한다.
바람을 등지거나(실외) 탈출구를 확보한 뒤(실내) 발화지점을 향해 손잡이를 누른다. 분사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25도 각도를 유지한다.

②뿌릴 때 손잡이를 꽉 쥐면 된다. 불이 난 곳을 향해 15도정도 살짝 아래로 숙인 뒤 빗자루 쓸 듯 좌우로 뿌린다. 안전거리 1~2m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천장 등 위를 향해 소화기를 쏘면 잘 나가지 않는다.

분사할 때는 빗자루 쓸 듯 좌우로 움직인다. 다만, 불이 천장으로 번지면 탈출구로 즉각 대피해야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
분사할 때는 빗자루 쓸 듯 좌우로 움직인다. 다만, 불이 천장으로 번지면 탈출구로 즉각 대피해야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

③소화기 분사시간은 최대 20초. 소화액이 무한정 나올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작은 양철통에 종이와 비닐 등 가연성 물질을 넣은 뒤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였다. 불길은 눈 깜짝할 새 활활 타올랐다. 부채꼴 모양으로 소화기를 뿌렸다. 가로 세로 각 40㎝, 높이 1m 통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완전히 잡는 데 30초 가까이 걸렸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오승훈 소방관(32·소방교)은 “30초는 연기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 안에 소화기를 써서 화재를 초기에 잡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불길이 천장으로 번질 경우 소화기를 통한 진압은 포기하고 탈출구로 즉각 대피해야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차량에는 가정용소화기 대신 차량용 소화기(용량 1.5㎏)를 두면 편리하다. 부피가 작고 보관이 용이한 게 장점이다. 다만 노즐이 없어 정확히 조준하기 어렵다. 분사시간도 5초 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을 대비해 차량 트렁크에 2, 3개씩 보관하면 좋다.

분사형 소화기가 부담스러운 노약자나 어린이들은 투척용 소화기(용량 600g) 사용법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생수병 모양의 투명용기에 소화액이 담겨있어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볍다. 보통 한 세트에 투척용 소화기 4개가 들어있다. 사용법은 간단하다. 불이 나는 곳을 향해 여러 개 연이어 던지면 된다. 용기가 충격을 받거나 열에 녹아 터지면서 불길이 진압되는 방식이다. 다만 큰 불이 났을 때는 소화액이 부족할 수 있다. 또 불길이 아직 약한 초기 단계인 경우 소화기를 던져도 제 때 터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불이 난 지점 바닥이나 가까운 벽에 보다 강한 힘으로 던져야 한다. 정확한 조준과 힘 조절이 핵심이다.

소화기는 어려지 않게 살 수 있다. 대형마트 일부에도 있다. 소방설비업체에서도 판다.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다. 1개당 가정용은 2만~3만 원, 차량용은 1만5000원 안팎이다. 투척용은 7000원~1만 원 선이다. 요즘 크고 작은 화재가 이어지면서 일부 제품은 품귀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소방설비업체 관계자는 “소화기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 당분간 찾는 사람이 계속 있을 것 같아 공급량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배준우 기자jjoonn@donga.com
사공성근 기자 4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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