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끼워넣은 양심불량 논문, 64%는 국가예산까지 받아
적발된 82건중 53건에 국가예산 지원
《 대학교수의 자녀들이 국제 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저자가 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저 교수 부모의 논문 철자를 좀 고치거나 실험실 연구수치를 기록하거나 해외 봉사활동에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쉽게 국제적 논문의 저자가 된 미성년 자녀들에게 대학 가는 문은 더없이 넓었다. 심지어 이 논문들의 64%는 국가의 연구예산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입수한 교육부 실태조사 자료를 통해서다. 정부 예산을 따다가 자녀 출세 길을 연 ‘짬짜미’ 현장에선 지성이나 양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최근 교육부의 실태조사에서 적발된 ‘중고교생 자녀 공저자 끼워 넣기’ 논문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연구개발예산을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의 입시를 위해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되는 논문에 국가예산이 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입수한 교육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고교생 자녀를 공저자로 끼워 넣은 논문 82건 가운데 64%인 53건에 정부예산이 지원됐다. 이 가운데 교육부가 파악한 33건에만 약 105억 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됐다. 나머지 20건은 여러 부처 예산이 산재해 있어 정확한 예산 규모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중 가장 많은 22억9100만 원을 지원받은 논문은 서울대 A 교수의 것으로, A 교수의 고3 자녀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비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쓰이는 만큼 중고교생 자녀들의 인건비로 유용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교수의 자녀들은 영문 철자를 교정하거나 실험 수치 기록을 도왔다는 이유로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많았다. 2012, 2013년 고등학생 자녀를 자신의 국제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린 서울대 B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논문 근거자료로 활용한 연구실 수치 기록에 자녀가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논문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을 지원받았다.
부산대 모 교수는 2016년 고3 자녀를 국제학술지 등재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렸다. 논문의 철자를 교정해줬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경대 모 교수도 ‘실험에 참여하고 영문 교정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3 자녀를 2012년 한 해에만 3번이나 국제·국내학술지 등재 논문 공동저자로 등재했다.
숙명여대 모 교수는 ‘고등학생의 길거리 음식 이용실태’와 관련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실으면서 자녀를 공동저자로 올렸다. 이 교수는 이 논문이 자녀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작성한 글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순천향대 모 교수는 2011년 미국 고교를 다니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각각 자신의 국제학술지 논문 공동저자로 등재했다.
교육부의 실태 조사에서는 유독 의대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눈에 띄었다. 의대 특유의 폐쇄적인 서열 문화 속에서 의대 교수들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자녀를 논문 저자로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모 교수는 2014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자신의 자녀를 대한당뇨병학회가 주최한 캄보디아 의료봉사에 참여시킨 뒤 국제학술지 등재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논문 끼워 넣기 사례가 가장 많이 발견된 대학은 성균관대(8건)였다. 성균관대 모 교수의 자녀는 고3 때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여름 리서치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여러 국제학술지 논문의 공동저자가 됐다. 이 논문 중 일부는 보건복지부의 연구예산을 지원받았다.
입시 전문가들은 “중고교생 가운데 국제학술지에 등재된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교수 자녀들은 사실상 논문쓰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의대에서는 교수인 아버지와 자녀가 지도교수와 학생 관계를 유지하며 같이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고, 그 자녀도 교수가 되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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