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에게 강제추행을 당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글을 올린 이는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근무하는 서지현 검사입니다. 피해 당사자가 직접 방송에 출연하고 여러 언론이 보도하면서 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해야 하는 검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워합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이고 구조의 문제이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서 검사의 말입니다. 그 사건이 8년 전의 일이라 하니 그동안 혼자 속으로 삭이다가 어렵게 고백한 서 검사의 용기에 수많은 시민단체와 누리꾼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사실을 인지하고 감찰 요구가 있었으나 조직 내에서 묵살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과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선뜻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드러난 성폭력 범죄는 실제 일어난 사건의 5% 미만에 불과하다고 하니 우리가 접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인 듯합니다.
언론에서 서 검사의 폭로를 한국판 ‘미투(#MeToo) 캠페인’이라고 부릅니다. ‘미투 캠페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도 당했다’라는 의미로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이 겪은 피해를 고백해 그 심각성을 알리는 운동입니다. 미투 캠페인은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인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사건 이후 영화배우 얼리사 밀라노가 지난해 10월 15일 처음 제안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밀라노는 ‘당신이 성폭력 피해를 봤거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SNS에 #MeToo라고 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미투 캠페인을 제안한 지 24시간 만에 50만 명 넘는 사람이 리트윗하며 지지를 표했고, 8만여 명이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귀네스 팰트로, 앤젤리나 졸리, 메릴 스트립, 에마 스톤, 내털리 포트먼, 제니퍼 애니스턴, 우마 서먼 등 많은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미투 캠페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미국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매케일라 머로니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미투 캠페인은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으로 확산됐습니다. 한국판 미투도 그 전부터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서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 도의회 의원, 의사 등 전문직 여성들의 참여와 함께 민간 기업으로도 확산돼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검찰 내 성범죄 사건 조사를 위해 정부도 나섰습니다. 법무부는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위촉했습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권 위원장이 이제 당당히 국가 권력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 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앞장서게 됐습니다.
“국가와 사회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도 하고 있는가?” 당시 권인숙 씨의 변호를 맡은 고 조영래 변호사의 변론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되어 우리의 귓전에 울립니다. 배려와 소통 없이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일방적 태도가 인간관계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수많은 ‘미투’들이 깨우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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