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주목받으면서 문단 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다시 불붙은 가운데, 2016년 10월부터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해온 탁수정 전국언론노조출판지부 조합원은 7일 문단 내 성폭력 실태와 관련, “제대로 근절되지 않았다. 가해자로 지목됐던 이들은 어떤 처벌 없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탁 조합원은 이날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해시태그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문인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사람이 있다. 피해를 폭로하신 분들이 폭로 이후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작가회의가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들을 징계하겠다고 했었는데 징계를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더라”며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로 지목됐던 사람들이 여전히 새로운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고, 페북(페이스북) 스타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또 보란 듯이 한자리 꿰차기도 하고 그런 걸 보면 피해자들은 굉장히 크게 상처를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문학계는 2016년 김현 시인의 폭로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해 10여 명의 가해자 실명이 공개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문단 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 행태를 고발했다.
탁 조합원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된 계기에 대해 “김현이라는 시인이 어느 문예지에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을 실었다. 시인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고 문단 내에 성폭력이 만연한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글이었는데, 그 당시 그 글을 읽고 되게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문단이 너무 폐쇄적인 곳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과연 될까’라며 좀 회의적이기도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데 이후 김현 시인을 포함한 몇몇 시인 분들이 만드는 독립잡지 ‘더 멀리’에서 문단 내 성폭력 피해를 당한 분들이 글을 보내주면 싣겠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공지하면서 판을 깔았다”며 “또 그 즈음 문단의 어느 남성이 다소 부적절한 칼럼을 한 신문매체에 실었고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 반발한 여성분들이 트위터를 통해서 피해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후 끊임없이 여러 피해 폭로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탁 조합원은 “변화가 아주 없진 않았는데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집단의)성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비율이 높은 업계에서도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피해가 많이 속출하고 이런 걸 많이 봤다”고 지적했다.
탁 조합원은 “사실 문단은 권력집단이 실제로 공고하게 존재를 하고 또 정치권이랑도 맞닿아 있다. 그들의 공고한 카르텔이나 또는 의리, 이런 게 이유가 될 것 같다”며 “어제 어떤 기사를 보니까 모 시인단체 협회장으로 뽑힌 분이 2007년에 대학 내 성폭력 물의를 일으켰던 문인이더라. 이런 걸 보면 (가해자가)타격을 안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탁 조합원이 언급한 시인단체 협회장은 감태준 시인(71)이다.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선출된 감 시인은 2007년 중앙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으로 해임됐으나,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 시인은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탁 조합원은 “(처벌을 받은 후)활동에 지장을 받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라며 “폭로 이후 피해자들이 철저하게 보호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힘들고 힘든 상황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폭로 이후에 일어나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이나 대중이 폭로 피해자들을 너무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금세 사라지는데 피해자는 폭로 이후에도 일하고 밥 먹고 잠자며 살아가야 한다. 그게 안 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유명 원로 시인의 성추행 행위를 폭로했다. 문제가 된 작가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반인들도 추정이 가능할 정도로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후배 문인을 격려하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해명했지만, 최 시인은 한 방송에서 “구차한 변명이다. 상습범이다. 너무나 많이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했고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고 반박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