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5일 독일 최대 노조인 IG메탈(금속노조·조합원 390만 명)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지부와 사용자가 근로 시간을 주당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줄이는 시간 유연제에 합의한 데 대해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한 합의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이번 합의로 노동자들은 아이나 노인 등 가족을 돌보는 일이 생기거나 개인적인 사유가 있을 경우 최대 2년 동안 일시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 주당 28시간 근무를 할 수 있고 원할 때 다시 주당 35시간 풀타임으로 복귀가 가능하다. 외르크 호프만 노조위원장은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과 건강, 가족을 위해 더 적은 시간을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의 수혜자는 이 지역 노동자 90만 명이다. 벤츠 제조사 다임러와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 등 독일 산업의 중심지인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이뤄진 합의는 독일 전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한 2003년 노동시장 개혁과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독일 노동자들은 10년 동안 평균 임금 인상이 0.81%에 그칠 정도로 찬바람을 맞았다. 그러나 최근 실업률이 3%대로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노조의 협상력이 커졌다. 기업들은 숙련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을 정도였다.
독일 노동자들은 예상을 깨고 임금 인상보다 노동시간 단축을 선택했다. 노조는 원래 최소 6% 이상 임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28시간 탄력 노동시간제를 받아내면서 인상폭은 4.3%로 줄였다. 그나마 27개월 동안 나눠서 인상되기 때문에 실제 인상률은 3.5% 정도다. BBC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목소리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전했다.
독일은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이라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이 강한 국가였다. 이 때문에 고소득 여성들이 출산을 꺼려 출산율이 2005년 유럽 최저 수준(1.3명)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가족 정책 변화 등에 힘입어 남성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독일에서는 부모가 동시에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아이가 돌봄이 필요한 특정 기간 동안 부모 근로시간을 단축한 후 점점 늘려가는 ‘가족 근로시간’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독일 정부는 2007년부터 여성의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축소하는 대신 남성이 육아휴직을 쓸 경우에만 부부에게 2개월 더 육아 휴직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남성들의 육아휴직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실제 2006년 3.5%에 그쳤던 남성의 육아휴직은 2014년 34.2%로 늘었고 출산율은 1.5명까지 상승했다.
독일 언론들은 이번 합의에 대해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노동시간 자기결정권’이 커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IG메탈의 로만 지트젤스베르거 디렉터는 “협상 중 가장 힘쓴 부분은 노동시간과 관련해 근로자들의 자기 결정권을 강화하는 문제였다”며 “이제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포함해 누군가를 돌봐야 할 때 고용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노동시간을 바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IG메탈에 앞서 독일 운송노조인 EVG가 지난해 협상을 통해 노동시간 자기결정권을 얻어냈다. 이에 따라 노조원들은 올해부터 임금 2.6% 인상과 연간 6일 휴가 증대 중 원하는 것을 택할 수 있다. EVG에 따르면 56%가 휴가 증대를, 42%가 임금 인상을 원했다. 독일노동조합연합(DGB)의 레이너 호프만 노조위원장은 “앞으로 몇 년 간 노사간에 노동 시간 모델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가장 큰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크탱크 한스 베클러 재단의 구스타프 호른 교수는 “이번 IG메탈 노조의 제안은 매우 현대적인 제안으로 미래 숙련공들은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춰서 유연한 근로 시간을 할 수 있느냐로 자신의 회사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Handelsblatt) Jorg Hofmann Roman Zitzelsberger Reiner Hoffmann Gustav Horn of the Hans-Boeckler Foundation think t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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