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窓]누명 쓰고… 기억과 명예 잃은 소방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8일 03시 00분


박두석 전 국민안전처 소방조정관의 집 작은방에 그가 입었던 제복과 여러 표창이 진열돼 있다. 고양=권솔 기자 kwonsol@donga.com
박두석 전 국민안전처 소방조정관의 집 작은방에 그가 입었던 제복과 여러 표창이 진열돼 있다. 고양=권솔 기자 kwonsol@donga.com
박두석 씨(56)는 작은방 앞에 설 때마다 심호흡을 한다. 그는 “이상하게 이 방에 들어갈 때면 가슴이 저린다”고 말했다. 안에는 그가 입었던 제복이 걸려 있다. 옆에는 대통령상 등 각종 표창이 진열돼 있다.

그는 ‘전직’ 소방관이다. 10개월 전 정든 제복을 벗었다. 지금은 사라진 국민안전처 소방조정관(소방정감)이 박 씨의 마지막 직책이다. 지난해 4월 인사담당 직원이 박 씨를 찾았다. 그리고 ‘의원면직 동의서’를 내밀며 “휴직 연장이 거부됐다. 하루 뒤 휴직기간이 끝나면 직권면직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1년 6개월간 병가와 휴직을 반복 중이었다. 그는 말없이 동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휴직 연장이 거부된 건 그가 받은 징계 탓이다. 2014년 국무조정실은 소방장비 구매 실태를 감사했다. 76억 원 상당의 예산 낭비 의혹이 포착됐다. 게다가 고위직 소방간부가 이를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한 직원의 ‘내부 고발’이 결정적이었다. 박 씨는 축소와 은폐의 당사자로 지목돼 감찰을 받았다. 박 씨가 감사 대상자인 다른 소방간부와 가깝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박 씨는 “부당한 감찰”이라고 주장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5년 10월 그는 직위해제됐다. 중징계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훈장을 받은 것 때문에 감봉 3개월로 낮춰졌다. 징계 충격 탓일까. 같은 해 11월 박 씨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가 병상에 누운 사이 소청심사위원회는 그의 심사청구를 기각했다.

박 씨를 대신해 가족들이 나섰다.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2017년 3월 열린 1심은 기각을 결정했다. 하지만 9개월 만에 내려진 2심 판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달 11일 서울고법 담당 재판부는 박 씨에게 내려진 징계가 이유 없다며 취소 판결했다. 검찰이 감사 대상자 대부분을 불기소 처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심 재판부는 박 씨를 상대로 한 감찰이 일부 직원의 일방적 주장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방청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징계는 취소됐지만 박 씨는 웃지 못했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한 달 후 의식을 차렸지만 그는 혈관성 치매 등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말은 잘 못하고 거동이 불편하다. 특히 단기 기억상실증 탓에 자신이 감찰받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판결 후 기뻐하는 가족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정도다.

그래도 두 아들에겐 여전히 ‘무쇠 같은 소방관’이다. 2014년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된 큰아들은 4년째 ‘화마(火魔)’와 싸우고 있다. 둘째 아들은 휴학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다. 두 아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아버지의 명예 회복이다. 복직한 뒤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다. 둘째 아들 영건 씨(26)는 “1년만 더 휴직이 연장됐다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마음 편히 작은방에 들어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방청은 박 씨의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소방청 관계자는 “직권면직이 아니라 본인 동의에 의한 퇴직이므로 규정상 어렵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권솔 기자
#소방관#휴직연장#징계#뇌출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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