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배송하며 늘 마주치는 이웃들이어서 소방대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7일 낮 12시 경기 하남시 CJ대한통운 물류터미널에서 만난 택배기사 신재하 씨(37)는 쏟아져 나오는 물품을 쉴 새 없이 지역별로 분류하고 있었다. 신 씨는 5일 택배물품을 배송하다 주택가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연탄재와 빗자루로 껐다. 그의 옷이 타고 신발 밑창이 녹아내릴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불은 5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동구 천호동 주택가 골목에서 났다. 신 씨는 우연히 약 30m 떨어진 곳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 택배물품을 일단 놓고 달려갔다. 공중화장실 만한 한 집의 외부 보일러실에서 뻘건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보일러실 옆에는 석유가 가득한 20L들이 철제 기름통이 있었다. 신 씨는 “기름통에 옮겨 붙으면 터져버릴 것 같아 기름통부터 치우고 119에 신고했다. 그리고 불을 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일러실 입구를 막은 자전거는 열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보일러실 옆에 놓인 걸레와 빗자루를 이용해 자전거를 치웠다. 소화기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전봇대 밑에 누군가 내다버린 연탄재가 봉투에 담겨 있었다. 봉투를 들어 보일러실 가까이 다가가 연탄재를 뿌렸다. 플라스틱 빗자루로 불씨를 때려 껐다. 그의 신발과 점퍼 팔 부분이 열기에 녹아내렸다. 때마침 인근에 사는 노인 두 명이 세숫대야에서 물을 받아와 뿌렸다. 불길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
10분 뒤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좁은 골목길을 어렵사리 뚫고 현장에 와서 불을 완전히 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 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물류터미널에서 만난 신 씨 동료들은 그를 ‘슈퍼영웅’ ‘불조심 영웅’이라고 불렀다. 동료 택배기사는 “택배일로 정신이 없었을 텐데 그 와중에 불까지 끈 게 대단하다. 택배기사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 씨는 겸연쩍게 웃으며 “같은 상황이 닥치면 동료들도 고민 없이 나서서 불을 껐을 겁니다. 내 이웃들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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