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전문직 워킹맘 꿈 이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9일 03시 00분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특화된 능력 맞는 일자리 정보 제공… 통번역사-외국어 강사로 130명 취업
입소문 나며 재능 가진 여성들 발길

8일 오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서울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8일 오전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서울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여섯 살 아들을 둔 푸팅팅 씨(35·여)는 2010년 중국의 기업에서 일하던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그해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와 서울 영등포구에 터를 잡았다. 중국의 대학에서 통·번역과 호텔관광을 전공했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게 통·번역사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으면 면접 때 “한국어 발음이 웃기다” “고객이 외모나 발음을 비하하면 참을 수 있겠느냐” 등의 말을 듣고는 망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7년을 보낸 푸 씨는 지난해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았다. 그해 12월 취업상담과 면접지도를 받은 뒤 5개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한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중국어 전문 통·번역사가 된 것이다.

휴대전화로 ‘합격’ 문자메시지를 받은 날 푸 씨는 바로 시어머니에게 알렸다. 그는 8일 “시어머니께서 ‘한국 청년도 취업하기 힘든 마당에 어떻게 취업했느냐’며 대견해하셨다. 한국에 정착한 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로웠는데 이제는 멋지게 일해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서울에 정착한 이주여성은 지난해 기준 3만3139명이다. 25개 자치구별로 보면 영등포구가 3422명으로 가장 많다. 외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자국 문화를 잘 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들 상당수는 단순 노무직에서 일한다. 자신들의 특화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 정보를 잘 모르는 까닭이다. 여기에 서류심사, 면접 등 취업 의지를 꺾는 관문도 도사리고 있다. 한 결혼이주여성은 “자기 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한국에 와서는 일용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현재 결혼이주여성에게 전문적인 취업상담을 해주는 공공기관은 서울에서 영등포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유일하다. 지난해 문을 연 이래 597명이 이곳을 찾아 235명이 취업했다. 이 가운데 130명이 통·번역사나 외국어 강사 자리를 잡았다. 초반에는 중국, 베트남 출신이 주로 찾았으나 입소문을 타고 최근에는 키르기스스탄, 모로코 등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국가 출신 이주여성들이 찾고 있다.

센터에서는 어학 능력과 학력을 갖춘 이주여성에게 맞도록 통·번역사나 관광가이드, 외국어 강사, 육아도우미 프로그램에 집중해 일자리를 발굴하려고 노력 중이다. 현재 250개 기업이 센터에 등록돼 있다. 기업이 사람을 찾으면 센터에서는 취업을 희망하는 이주여성의 능력과 원하는 업무 유형에 맞춰 연결해준다. 발성법이나 순차 통역을 위한 기술 등 관광 통역사나 무역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법도 배울 수 있다. 이주여성 전문 취업지도사 2명이 이력서 쓰는 법을 첨삭지도하고 모의면접도 한다.

구 관계자는 “재능이 있는 이주여성들이 육아와 가정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발굴해 한국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이주여성#전문직#워킹맘#통번역사#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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