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의정부에서 14년째 편의점을 하는 계모 씨(47)가 고개를 내저었다. 돈을 더 얹어준다고 해도 연휴, 특히 명절 당일 일하겠다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어렵다. 계 씨는 “일을 해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설 연휴에 계 씨는 아들과 12시간씩 교대로 편의점을 지킨다. 고향은 지난주에 다녀왔다. “명절 하루쯤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사장이기 때문에 찾는 손님을 위해 문을 연다. 하지만 본사와 365일 연중무휴 계약을 해서 쉬는 게 쉽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계 씨처럼 가맹본사와의 계약 때문에 설에 쉬고 싶어도 못 쉬는 편의점주가 많다.
13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시내 편의점주 10명 중 8명은 명절 연휴 자율영업을 원했다. 지난해 11월∼지난달 편의점주 951명을 조사한 결과다. 편의점주의 주당 노동시간은 65.7시간으로 일반 자영업자보다 17.4시간 많았다. 월평균 휴일은 2.4일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조사 대상인 서울시내 5대 편의점 본사 가운데 이마트24를 제외하고 모두 365일 연중무휴 하루 24시간 점포 운영을 기본 조건으로 가맹점과 계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19시간 영업을 원칙으로 하되 24시간 영업은 선택사항으로 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가 조사한 편의점 93%는 심야영업(0시∼오전 6시)을 했다. 이들 가운데 62%는 ‘심야영업을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편의점 가맹점주 연석회의’(연석회의) 관계자는 “지하철역처럼 심야에 문을 닫는 건물에 입점한 경우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심야에도 일한다”고 말했다.
심야영업을 해도 편의점주에게 실익은 그리 크지 않다. 아르바이트생을 쓰면 시급은 올라가지만 매출은 상대적으로 적다. 연석회의 관계자는 “연휴나 심야에는 유흥가에 있지 않는 한 적자를 감수하고 문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어 직접 가게를 보는 점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올해 최저임금이 올라 아르바이트생 쓰기가 더 부담스러워졌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평일 9시간 정도 일하던 계 씨는 올 들어 11시간가량 일한다. 주말에만 고용하던 아르바이트생 대신 아들이나 아내가 일한다.
무엇보다 설 연휴에 24시간 문을 여는 까닭은 “본사 눈치 보느라”라고 점주들은 입을 모은다.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42)는 “본사 전산망에 우리 가게 매출이 2시간 이상 ‘0’라고 뜨면 바로 이유를 묻는 전화가 온다. 상을 당하거나 아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본사는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심야영업을 하다 아르바이트생이 화장실에 가러 가게를 잠시 비웠을 때 찾은 고객이 ‘편의점에 아무도 없다’고 본사에 민원을 넣은 경우도 있었다. 다음 날 오전 본사에서 이를 지적하는 전화가 왔고 그 손님에게 사과 전화를 해야 했다. 이 씨는 “계약서에 ‘성실히 매장을 운영할 의무’가 명시돼 이런 일로 페널티(벌점)가 쌓이면 가맹 해지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쉬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휴일, 심야 영업이 소비자 편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자칫 영세 자영업자의 휴식권 등을 빼앗을 수도 있어 점주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해 관련 법령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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